[한류 콘텐츠가 살 길이다] 2. 콘텐츠 표준화의 명견만리

  • 동아닷컴
  • 입력 2016년 10월 7일 14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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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건축가' 김정민이 제시하는 '코리안 문화콘텐츠'의 방향

목수 출신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Ole Kirk Christiansen)'은 1932년 덴마크의 빌룬트(Billund)라는 지역에서 장난감 공장을 열었다. 이 공장은 훗날 1분에 420개, 1년에 2억 박스 판매, 9억 1,510만 3,765가지 형태의 조형물을 만들 수 있는 세계 최고, 최대의 완구기업인 '레고(LEGO)'로 성장했다.

'레고'는 덴마크어로 '레그 고트(leg godt)', '잘 논다(play well)'라는 뜻이다. 레고의 창업주는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창조적인 놀이를 할 수 있고, 모든 블록은 서로 호환되게 하여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시키게 했다. 디자인과 상품명은 서로 다르더라도 창업 이후 58년 간 제작, 판매된 레고 블록들은 자유롭게 서로 호환이 가능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완구에도 '문화콘텐츠 표준화'의 인사이트는 담겨있다.

호주 조각가 마이크 도일이 레고로 만든 '전쟁 없는 행복한 사회를 꾸리는 외계도시 오단(Odan)'(출처=mikedoylesnap.blogspot.com.au)
호주 조각가 마이크 도일이 레고로 만든 '전쟁 없는 행복한 사회를 꾸리는 외계도시 오단(Odan)'(출처=mikedoylesnap.blogspot.com.au)

위 사진은 호주의 한 조각가가 장장 600시간에 걸쳐 만든 예술작품이다. 이 작품이 전세계로 유명해 진 이유는 약 20만 개의 레고 블럭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 레고 블록들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 수천만 가지의 다른 형상물로 재탄생될 수 있다. 콘텐츠 표준화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본 재료들은 다양한 조합을 통해 각기 다른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것!

문화콘텐츠의 중요성만큼 문화상품과 문화기술(CT)의 표준화에 대한 관심 또한 뜨겁다. 하지만 학계, 산업계, 유관부처는 그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콘텐츠 표준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콘텐츠 표준화는 최종 생산품인 문화상품을 기본 구성요소로 세분화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결과'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동기나 과정이 어떻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인정 받는다. 반면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은 과정과 동기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성향은 문화소비 유형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우리나라는 드라마, 영화, 음반 등의 완제품 판매를 주요 비즈니스로 하는데, 영국의 경우 완제품 판매는 물론 완제품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를 세분화하고, 완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양한 스토리로 풀어서 각기 다른 결과물을 많이 만들어 낸다. 이 같은 성향은 영국을 세계 최고의 '컬처 비즈니스 강국'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원소스 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 하나의 자원을 다양하게 활용)'는 마치 레고 블록처럼, 세분화된 각각의 조각들이 창작자에 의해 수만 가지의 다양한 조합으로 확장될 수 있을 때 가능해 진다.

사전적 의미의 '표준화(Standardization)'는 표준이나 기준, 규격 등을 만들어 사용하여 합리적으로 조직화하는 작업이다. 표준화의 대상은 품질, 형상, 치수, 성분, 시험 방법 등 다양하며, 이들 간의 호환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대표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성장한 '에스엠엔터테인먼트(SM Entertainment)'는 캐스팅-트레이닝-프로듀싱-홍보/마케팅, 콘텐츠사업 등 5단계의 세분화된 엔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아티스트 캐스팅 및 트레이닝, 아티스트 콘셉트와 음반을 총괄하는 프로듀싱,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사업부(매니저), 홍보와 마케팅, 디지털 음반 및 콘텐츠를 관리하는 콘텐츠 사업부 등으로 나뉘어 있다. 최근에는 아티스트 표준화를 넘어서 IT 기술과의 호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문화기술 표준화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콘텐츠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방송사, 외주제작사, 게임사,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그들이 과거에 고수했던 1차 완제품 판매에 여전히 집중하고 있다. 부가사업이 필요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생존이 아닌 선택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익숙한 비즈니스가 가장 편하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성공 이면에는 해외판권, 광고수익, 스타의 몸값보다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가 있었다. 만약 해당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가 이 드라마의 콘텐츠를 표준화했다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의 국가브랜드 위상이 높아지면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산업전반에 걸쳐 'K' 붙히기가 유행이다. 물론 그 의도는 이해되지만, 이른 바 'K-시리즈'가 해외시장을 겨냥한 만큼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정체성(아이덴티티)을 정확히 알고 이를 소비하는 지에 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견해다.

오늘날의 글로벌 메가 트렌드는 아시아 문화의 주류화(Mainstream), 콘텐츠 파워의 증가, 문화 코드의 동질화, 콘텐츠의 사회화, 360도 사업의 활성화 등 다섯가지 패러다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패션, 디자인, 예술, 외식 등의 문화산업에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세계 표준(Global Standard, 글로벌 스탠다드)'이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보편적 세계관이며, 세계인들의 보편적 공감대라 할 수 있다.

콘텐츠 표준화 사례(출처=IT동아)
콘텐츠 표준화 사례(출처=IT동아)

우리 문화에 'K'를 붙힌 K-Food(한식), K-Fashion(한복), K-Music(국악) 등은 한국중심의 접근법이다. 공감대가 약한 대중이나 세계인들과 소통하려면 이들 콘텐츠를 보다 세분화, 표준화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 전통문화를 기존 방식과 다르게 '한국의 색', '한국의 맛', '한국의 촉', '한국의 소리', '한국의 향', '한국의 이야기' 등 대표적인 6개의 재료(Ingredient)로 세분화한 다음,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조화를 통해 '한국적 표준(Korean Standard, 코리안 스탠다드)'을 만드는 것이다. 이 코리안 스탠다드는 한국의 색채를 갖고 있지만, 세계인의 정서에도 잘 어울려 다양한 산업과의 융합이 가능해 지리라 기대한다.

그동안 무형의 것으로 인식된 문화콘텐츠를 유형의 상품으로 개발, 유통함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 바로 표준화다. 즉 콘텐츠 기본유형과 개발모델 표준화를 실현함으로써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이 더 크게 도약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글 / 김정민. 브랜드건축가 겸 융합한류 비즈니스/아시아문화 컬럼리스트 (architect@brandarchitect.co.kr)
정리 / 동아닷컴 IT전문 이문규 기자 mun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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