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가 “정경유착 전경련 해체하라” 소리 나오게 만들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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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청와대 지시로 대기업들로부터 800억 원을 걷어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몰아줬다는 의혹이 짙어지면서 어제 국회 국정감사에선 ‘전경련 해체’ 주장이 쏟아졌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002년 불법 대선자금 모금 이후 권력이 기업을 상대로 한 노골적 강제모금이 사라졌는데 올해 부활한 것이 미르·K스포츠 재단”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전경련이 정경 유착의 창구가 됐다”며 전경련 해체를 촉구했다. 기획재정위원회 국감인데도 전경련 성토가 중심이 되면서 조선·해운 구조조정의 난맥상 같은 핵심 현안이 뒷전으로 밀렸을 정도다.

 전경련은 억울할지 모른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지난달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고 내가 안(案)을 내고 총괄했을 뿐, 제기되고 있는 (청와대 개입) 의혹과는 연관이 없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돈을 낸 기업들조차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익 창출이 목적인 기업들이 수십억 원씩 빚에 쫓기듯 시한을 정해 납부한 것은 자발성과는 거리가 멀다. 전경련으로선 청와대 개입을 인정하면 정권의 눈 밖에 나고, 기존 해명을 고수하면 정치권과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 외통수에 걸린 셈이다.

 지금까지 나온 의혹이 맞는다면, 이번 사안의 본질은 권력이 전경련을 동원해 사적 이익을 챙긴 ‘권력형 비리’라고 봐야 한다. 더민주당에 따르면 현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7개의 재단과 기관 등에 대기업 등의 기부금이 2146억 원이나 된다. 박영선 더민주당 의원은 “전경련이 말 잘 듣는 기업은 봐주고 말 안 듣는 기업은 내치며 준조세를 걷고 있다”고 했다. 그중 미르·K스포츠 재단은 공적 목적이 의심스러운 데다 대통령 측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곳임에도 800억 원이나 몰아줘 사달이 난 것이다.

 보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과 진보 싱크탱크인 경제개혁연대도 4일 전경련 해산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전경련이 정치적 목적과 연계돼 자신들이 주장하는 ‘시장경제 창달’이나 ‘기업 하기 좋은 환경’에 기여하지 못한 채 회원사들에 부담만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어제 국감 답변에서 “전경련 해체는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정경 유착의 공범인 정부가 슬그머니 발을 빼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치권에 자금을 대주고 사업적 특혜를 받는 정경 유착으로 유명했던 일본 경단련(經團連)은 2002년 일경련(日經連)과 통합하면서 공익성이 강한 기구로 새롭게 태어났다. 전경련은 일본의 경단련식 개혁을 통해 ‘제2의 출범’을 하거나, 누가 거금을 걷으라고 팔을 비틀었는지 ‘양심선언’ 한 뒤 해체 수순을 밟는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청와대#미르 재단#k스포츠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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