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성동기]방콕에 부는 한류 비즈니스 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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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기 국제부 차장
성동기 국제부 차장
 최근 발표된 마스터카드 조사에서 태국의 수도인 방콕이 세계 1위 관광도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방콕 시민의 두 배가 넘는 2147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올해 방콕을 방문했거나 할 예정이다. 방콕이 런던(1988만 명) 파리(1803만 명) 두바이(1527만 명) 뉴욕(1275만 명)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인 데는 중국인 관광객(유커)의 힘이 크다. 방콕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10명 중 4명이 중국인이다. 유명 관광지 어디를 가도 중국인들 천지다. 하지만 태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중국 문화가 아니라 우리의 한류다.

 한국 특수부대원들의 활약상과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올 초 한국에서 방영되자마자 태국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군 출신인 쁘라윳 짠오차 총리까지 나서 “태양의 후예를 꼭 보라”고 권했을 정도다. 또한 수년 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인기를 끈 뒤론 방콕 거리 곳곳에 커피전문점들이 생겨났다. 방콕 호텔 객실의 TV를 켜면 태국어로 더빙된 한국 드라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류 열기가 뜨거운 방콕에 요즘 새 기류가 감돌고 있다. 한류 인기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움직임이다. 올 11월 방콕에 문을 열 예정인 초대형 한류쇼핑몰 ‘쇼 DC’(총면적 약 15만 m²)는 말레이시아와 태국 부호(富豪)들이 주요 투자자다. 롯데면세점도 이곳에 입점하고, 한국 측 파트너들이 여럿 참여한다. 말레이시아와 태국 투자자들은 방콕 1호점에 이어 향후 치앙마이, 푸껫,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등 주요 거점 도시에 한류 쇼핑몰을 개설해 한국에 가지 않고도 한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치맥(치킨+맥주)과 떡볶이의 맛을 방콕에서 완벽하게 살려내겠다는 것이다. 한 해 2100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 1위 관광도시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수완나품 공항, 돈므앙 공항과 쇼 DC를 곧바로 연결하는 셔틀버스망도 갖출 계획이다.

 지난주 태국 정부 초청으로 방콕을 방문한 길에 만난 차야딧 후따누와뜨라 쇼 DC 회장은 한류가 기회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중국계 태국인인 그는 주요 주주 중 한 명이다. “몇 달 전 빅뱅의 방콕 공연에 1만5000석이 꽉 찼습니다. 신곡이 나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다들 노래 가사를 따라 부릅니다. 공연장 밖에선 ‘아줌마’(한국말로 이렇게 말했다) 수천 명이 빅뱅 얼굴 한번 보려고 기다립니다. 열기가 대단하죠?”

 이뿐이라면 투자할 확신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짐작한 대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많은 태국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옷과 화장품을 사고 싶어 하는데 방콕에선 구할 수가 없어요.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비행기 타고 서울에 가서 잔뜩 사갖고 옵니다. 방콕에도 코리아타운이 있지만 한국인들은 제각각이에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한류 쇼핑몰입니다.”

 동남아 사람들이 한류를 좋아하고 가치를 알아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개발도상국 경제발전의 모델이 된 한국이 문화에서도 인정받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가 어렵게 만들어낸 한류를 우리가 아닌 외국인 투자자들이 앞장서서 비즈니스로 연결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류를 좋아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한류의 본산인 한국으로 불러들이려는 고민이 필요한 때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이 현실이 돼선 곤란할 것이다.
 
성동기 국제부 차장 esprit@donga.com
#방콕#태국#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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