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 2000편의 논문에 활용됐는데… 오리지널 ‘세포주’와 다르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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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성 흔들리는 세포주 실험

생명과학 연구실에서 세포주를 관리하고 있는 모습(위)과 1951년 자궁경부암 환자의 세포에서 얻어진 ‘헬라 세포주’(아래). 실험실에선 여러 개의 세포주를 동시에 키우는 경우가 많아 세포주끼리 섞이거나 뒤바뀌는 경우도 잦다. 위키미디어 제공
생명과학 연구실에서 세포주를 관리하고 있는 모습(위)과 1951년 자궁경부암 환자의 세포에서 얻어진 ‘헬라 세포주’(아래). 실험실에선 여러 개의 세포주를 동시에 키우는 경우가 많아 세포주끼리 섞이거나 뒤바뀌는 경우도 잦다. 위키미디어 제공
 의약품의 독성 검사부터 신약의 효과 검증까지. 생명과학연구실에선 수많은 실험이 진행된다. 어느 날 이런 실험 결과를 전혀 신뢰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 세계에서 쓰고 있는 실험용 세포. 일명 ‘세포주’의 신뢰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스웨덴 웁살라대 벵트 베스테르마르크 교수팀은 8월 31일, 50년 동안 뇌과학 연구에 널리 쓰이는 세포주 ‘U87MG’의 신뢰성에 큰 문제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발표했다. U87MG는 1966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약 2000편의 논문에 이름을 올릴 만큼 많이 활용됐다. 그런데 최근 여러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U87MG의 유전자가 1966년 처음 웁살라대에서 얻었던 U87MG 세포주의 유전자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이것은 여러 번 배양을 반복하는 동안 세포주의 유전자가 변이됐다는 의미다. 그간 U87MG로 실험했던 뇌종양 치료제의 효과를 믿기 어렵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포주는 무한히 증식할 수 있는 세포로 일종의 암세포다. 주로 암환자에게서 떼어낸 종양 조직을 쓰지만 일반 세포를 암세포화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배양 접시에서 끊임없이 길러내면 지속적으로 실험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주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과학자들은 가급적 많은 실험에 사용된 적이 있는 세포주를 선택한다. 그동안 쌓여온 수많은 논문과 비교할 수 있어 실험 결과를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주 변형은 자연적인 유전자 변형이 원인인 경우도 있지만, 연구자들의 실수가 원인이기도 하다. 이름표를 잘못 붙이거나, 다른 종류의 세포주가 배양접시에 섞여 들어가는 경우 등이다. 세포주 신뢰성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보건대 월터 넬슨리스 연구원은 1977년에 당시 과학저널 사이언스 논문을 통해 ‘253개의 세포주를 조사해보니 41개(16%)에서 유전자 변이를 비롯한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네이처 등 유명 저널은 연구 과정에서 세포주를 미리 꼼꼼히 검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세포주인증위원회가 신뢰성이 없다고 판단한 475개 세포주를 실험에 이용할 경우, 유전자 분석 등으로 신뢰성을 재차 확인하라는 것이다. 미국국립보건원(NIH) 역시 올해부터 과학자들이 연구비를 신청할 때 연구에 사용할 세포주 신뢰성을 확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세포주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3년 국제과학자협회에서 암세포주의 유전자 정보를 정기적으로 수집하자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미국 생명과학기업 젠텍의 리처드 네브 연구원팀은 다양한 세포주 속에 포함된 3500개 이상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담은 연구 결과를 ‘네이처’ 2015년 4월 16일자에 실었다.

 국내에서도 한국세포주은행이나 세포주 판매 업체들에서 세포주의 진위 검증 서비스를 시작됐다. 연구자들이 의뢰할 경우 DNA 지문분석 등 다양한 검증법을 통해 세포주의 유전자를 분석해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준다.

 이숙경 가톨릭대 의과대 교수는 “인간 세포주의 20%가 성별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력이 불분명하다”며 “세포주는 유전자 변이가 많은 암세포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꼼꼼한 유전체 분석 이후에 실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수빈 동아사이언스 기자 sbshin@donga.com
#세포주#위기#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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