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모습이 곧 임종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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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에서 만난 월주 스님…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 출간

금산사 대적광전 앞에 선 월주 스님. 50년간 살아온 금산사지만 팔순의 나이에도 외부 활동 하느라 1년에 두 달가량 머물 정도다. 건강법을 묻자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난다”며 웃는다. 무리하게 욕심 내지 않고 안 되는 건 빨리 포기하며 사는 것이 건강법이라는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 제공
금산사 대적광전 앞에 선 월주 스님. 50년간 살아온 금산사지만 팔순의 나이에도 외부 활동 하느라 1년에 두 달가량 머물 정도다. 건강법을 묻자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난다”며 웃는다. 무리하게 욕심 내지 않고 안 되는 건 빨리 포기하며 사는 것이 건강법이라는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 제공
 “불법은 세간에 있고 세간을 떠난 깨달음은 없다. 세간을 떠나 도를 찾는 것은 흡사 토끼 뿔을 구하는 것 같다.”

  ‘불법재세간 불리세간각 이세멱보리 흡여구토각(佛法在世間 不離世間覺 離世覓菩提 恰如求兎角).’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장과 두 차례 총무원장을 지낸 월주 스님(81)이 가장 좋아하는 화엄경 구절이다. 그는 30여 년 전 한 스님의 서예 전시회에서 이 구절을 본 뒤 잊은 적이 없다.   

 불교계에선 그를 이판(理判·수행을 위주로 하는 승려)보다는 사판(事判·종단 일을 주로 하는 승려)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이판, 사판이 따로 없다는 이 구절이 더 가슴에 와 닿았을지 모른다.

 26일 스님이 조실(祖室·사찰의 큰 어른)로 있는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만난 그는 팔순을 넘겼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이판과 사판이 어디 있고, 세간과 출세간이 따로 있느냐. 이판이 아니면 사판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사판을 하지 않으면 이판도 의미 없다.”

 이날 자리는 그가 최근 펴낸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의 기자간담회. 책은 그가 2011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나의 삶 나의 길-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를 바탕으로 했다. 당시 신문에는 1950, 60년대 불교 정화운동, 1980년 신군부에 의한 10·27법난(法難), 1994년 종단 개혁 등 불교 현대사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그의 증언과 청담·성철 스님, 역대 대통령과 총리 등 인연을 맺은 사람에 대한 회고가 담겼다. 이번 회고록에는 1990년대 사회 활동과 인물 회고 등을 추가해 분량이 두 배로 늘었다. 회고록과 함께 사진집 ‘태공’(월주 스님의 법호)과 법문집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도 펴냈다.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언제 느꼈나.


 “1960년대 초 금산사 주지로 있을 때 온몸이 아팠다. 그때 ‘이뭣꼬’ 화두를 3개월간 줄기차게 들면서 깨달음이 있었다. 몸도 나았고 머리로만 이해하던 금강경의 뜻도 가슴에 들어왔다. 중심이 서니까 주지 일도 더 잘됐다. 그때 ‘마음이 부처’라는 걸 새삼 느꼈다.”

 ―1980년 10·27법난으로 인생에서 큰 분기점을 맞았다.


 “법난은 국가권력이 불교에 개입해 교권을 유린한 대표적 사례다. 노태우 정부 때 강영훈 총리가 종단 인사들을 초청해 사과했지만 아직도 진상규명과 보상이 완결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법난 이후 3년간 해외에 나갔다온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당시 태국 미얀마 등의 불교 종단도 복지와 봉사에 힘쓰고 있었는데 우리 불교는 기복적이고, 가람 수호에만 힘썼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1990년대부터 ‘나눔의집’이나 ‘지구촌공생회’ 등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됐다.”

 ―책에서 오도송(悟道頌·깨달은 뒤 내놓는 게송), 임종게(臨終偈·입적 전 내놓는 게송)의 남발을 비판했는데….

 “1970년대 청담 스님이 입적했을 때 주위에서 임종게를 내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청담 스님 살아오신 것 자체가 임종게인데 별도의 임종게가 왜 필요하냐’며 내지 않았다. 어설픈 오도송, 임종게를 내선 안 된다. 나의 임종게도 내가 살아온 모습이다.”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 것이 행복이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면 피곤하고 불행하다. 장관이 아니고 면장을 하더라도 주민 복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즐겁다고 느끼면 행복한 거다.”

 ―1990년대 나눔의집을 세워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안식처를 마련했다. 최근 한일 양국의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평가하나.

 “역대 정권에서 위안부 할머니 보상 문제 등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역대 다른 정권보다도 일본에 가장 강하게 얘기하고 합의까지 이끌어낸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내용은 미흡하다. 소녀상 이전은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 문제는 더 지켜보겠다.”

 ―앞으로 계획은….


 “지구촌공생회를 통해 빈곤국가에 2300여 개의 우물을 파서 깨끗한 물을 먹도록 지원했는데 아직도 16억 명이 식수 부족 상태다. 해외 봉사 시 1인당 하루 식대를 10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등 기부금을 헛되이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 우선 목표는 미수(米壽·88세)까지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내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다. 3년 뒤에는 이 회고록 증보판도 내려고 한다. 아직도 못한 얘기가 많다. 허허.”
 
김제=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금산사#월주 스님#토끼뿔 거북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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