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절벽 막자” 일자리 예산 10% 늘려… SOC는 8.2% 삭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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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정부 예산안 400조7000억]400조 첫 돌파 ‘슈퍼예산’ 효과는

정부가 11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에 이어 사상 첫 400조 원대 ‘슈퍼예산’을 편성한 것은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해 경기 부양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가계가 지갑을 닫고, 기업의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 투입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다. 실제로 지난해 경제성장률(2.6%)은 재정 기여도를 빼면 1.8%로 줄어들 정도다. 문제는 올해에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 1분기(1∼3월) 성장률(0.5%)에서 민간 부문 기여도는 아예 ‘0’이다.

○ 일자리 예산 확대해 고용절벽 대응


정부의 내년 슈퍼예산 편성에서 방점은 일자리 예산에 찍혀 있다. 고용절벽이 현실화되면서 일자리 지키기가 최우선 국정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일자리 예산은 올해보다 10.7% 증가한 17조5000억 원이다. 고용 창출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일자리 사업평가를 통해 고용 실적이 낮은 사업은 폐지 또는 축소했다. 조기 재취업 수당은 폐지되고 청년인턴 사업은 규모가 5만 명에서 3만 명으로 축소됐다. 반면 청년층이 선호하는 게임, 가상현실(VR), 바이오의료기술 관련 지원 예산은 늘어나고, 청년 창업을 돕는 ‘창업성공 패키지’ 프로그램에 500억 원이 편성됐다. 경찰·해경·교원 공무원 등 공공 부문 일자리(3397명)와 기업과 연계한 노인 일자리(5만 개 이상)도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전체 예산의 4.4%에 불과한 일자리 예산만으로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경기 부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간접자본(SOC)과 산업 중소기업 에너지 관련 예산은 올해보다 크게 줄었다. 미래 먹거리를 키우는 연구개발(R&D) 예산도 1.8% 증가에 그쳤다.

추경에 SOC 사업이 빠진 데다 내년에 대선이 있어 SOC 예산이 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는 충분한 SOC 재고가 마련된 만큼 사업 타당성이 확보된 사업만 추진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지역의 핵심 SOC 사업만 추진 대상에 올랐다. 인천발·수원발 고속철도(KTX) 연결선 설계(60억 원)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춘천∼속초 동서고속철 건설사업(65억 원) 등이 대표적이다. 또 영남권과 제주도 신공항의 차질 없는 건설을 위해 95억 원 규모의 신공항 기본계획 수립비가 책정됐다.

○ 2019년엔 의무지출이 재량지출 앞질러

일각에선 의무지출 비중이 큰 복지와 국방 분야 예산으로 인해 정부가 불가피하게 경기 부양 관련 예산을 줄인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복지(5.3%)와 국방(4.0%) 분야는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항목이 많다 보니 예산 증가율이 전체 예산 증가율(3.7%)을 웃돌았다. 130조 원의 복지예산 중 기초연금처럼 법령에 따라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의무지출은 87조9000억 원(67.6%)에 달한다. 국방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40조 원을 넘어섰다. 이 중 병력 운영과 전력 유지에 들어가는 경직성 예산은 28조1757억 원(70.0%)이다. 40.5% 증액된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구축사업 등 방위력 개선 예산은 30% 남짓에 불과하다.

아직까지는 정부가 조정하면서 쓸 수 있는 재량지출이 의무지출보다 근소하게 많지만 3년 뒤인 2019년에는 역전될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예산의 절반가량이 사용처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무작정 빚을 늘려 경기 부양에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경기 부양 못지않게 재정건전성 확보도 중요한 정책 목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정건전화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5%’를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상태다.

이런 이유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민간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는 구조개혁이나 규제 철폐 등의 근본 처방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필요한 것은 정상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경쟁과 혁신, 그리고 구조개혁”이라고 강조했다.

○ 누리과정 논란 재연될 듯

내년 예산안에도 야당이 요구한 누리과정 예산은 포함되지 않아 국회 심의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지방재정을 대폭 늘려준 만큼 교육감들이 그 안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실제 내년도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각각 12.5%, 11.4% 증가했다. 이는 2008년 이후 최고 증가율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교부금 예산이 굉장히 많이 늘었는데도 일부 교육감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사실상 위법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누리과정 관련 협의체를 구성해 국회 예산안 심의 때 제대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경색된 남북 관계를 반영하듯 통일 부문 예산이 줄어든 것도 눈에 띈다. 남북경제협력기금 예산은 개성공단 폐쇄의 여파로 2538억 원가량 감소했다. 내년 19대 대선 선거비용 및 정당보조금 명목으로 2646억 원이 반영됐다. 이는 18대 대선(2187억 원) 때보다 21.0% 증가한 규모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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