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대중화 꿈꾸는 ‘거리의 성악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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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섭 인씨엠예술단장
스피커 하나 들고 3년간 200회 공연… “후원금 2000원 내던 노숙인 못잊어”

무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20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스타광장.

한 성악가가 스페인 가곡 ‘그라나다’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곧이어 이탈리아 민요 ‘푸니쿨리 푸니쿨라’가 이어졌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길거리 클래식 공연’이었다. 관객들은 공연 도중 자유롭게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가던 길을 멈추고 클래식을 즐기는 ‘입석 관객’도 많았다. 국내 유일의 ‘버스킹 성악가’ 노희섭 인씨엠예술단 단장(46·사진)의 200회째 길거리 공연이었다. 노 단장은 “평소에는 혼자 공연하지만 오늘은 200회라는 상징성 때문에 많은 동료가 도와주러 나왔다”며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서 500회, 1000회까지도 계속 거리에서 공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성악 관련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늦깎이 성악가다. 단지 ‘노래를 하고 싶다’는 의지로 부모를 설득해 삼수 만에 성악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1997년 말 단돈 200만 원을 들고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른 것부터가 그랬다. 세종문화회관 오페라단원(2003∼2012년)으로 활동하던 2006년에는 클래식 공연전문단체 인씨엠예술단을 창단했다. 예술단은 2009년까지 매년 여름 서울 강서구 방화근린공원에서 ‘한여름 밤의 페스티벌’이라는 대규모 야외 무료 공연을 펼쳤다.

노 단장은 2012년 세종문화회관 오페라단을 떠나 인씨엠예술단에 전념하기에 이른다. 현실은 생각보다 더 냉정했다. 후원 기업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무료 공연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모두가 지쳐갈 때쯤 그는 스피커 하나를 들고 홀로 거리로 나섰다. “돈이 들지 않아서”였다. 2013년 7월 19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 야외무대에서 그의 첫 공연이 열렸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초기 영등포에서의 공연을 꼽았다.

“노숙인 한 명이 무려 4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제 노래를 들으시더군요. 그러더니 박스를 팔아 벌었다는 전 재산 2000원을 후원함에 넣으시는 거예요. ‘좋은 음악 들려줘서 고맙다’면서. 그때 그분의 행복한 표정은 지금까지 제가 버텨온 가장 큰 힘이 됐습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노희섭#거리의 성악가#길거리 클래식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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