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앨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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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이 차례대로 결혼을 하게 돼 집을 떠날 때, 나와 자매들은 가족 앨범을 모두 꺼내놓고 사진들을 나눠가졌다. 독사진은 각자 챙기면 간단했지만 문제는 오래전에 찍은 가족사진들이었다. 각 사진에 대한 서로의 은근한 애착 때문에 사진을 나누는 데 시간이 꽤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와 살고 있는 나는 가족사진을 나누는 데 흔쾌히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집을 떠나면서 옛 사진들을 갖고 싶어 하는 자매들의 마음만은 이해했던 것 같다. 그 후로 우리 가족의 접착식 앨범에는 동생들이 떼어간 사진의 빈자리가 군데군데 남게 되었다.

내털리 포트먼이 원작을 읽고 반해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아 화제인 영화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자전소설이다. 대개의 뛰어난 작품들이 그렇듯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유년의 일들을 세세히,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기라도 한 듯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감탄하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가는 아마 가족사진이 담긴 아주 두툼한 앨범들을 보물처럼 갖고 있는 게 틀림없어’라고 말이다.

8월 넷째 주이니 휴가철은 지나갔다고 말해도 될까. 어딘가 다녀왔다면 사진들도 찍었을 텐데. 요즘은 스마트폰마다 카메라와 앨범 기능들이 편리한 방식으로 내장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진을 인화해 앨범에 꽂아두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어느 문구점에 가도 다행히 아직 앨범들을 팔고 있으니까. 내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만 해도 앨범은 생일이나 졸업, 입학식 같은 때 큰맘 먹고 주고받는 선물이기도 했다. 그중 ‘칸나 앨범’이 가장 인기가 있었던가?

아이 둘을 낳고 난 후 막냇동생은 사진을 인화해서 아이들이 손에 잡기 좋은 정도의 가볍고 작은 포켓식 앨범에 넣어준다. 앨범 등에 날짜를 적어 책장에 세워둔 게 20여 권 된다. 초등학교 조카 둘이 종종 마루에 나란히 엎드려 자신들의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이 담긴 앨범을 넘기면서 그땐 그랬지, 라고 소곤거리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 모습은 어느 오후 안방에서 낡은 접착식 비닐이 거의 떨어져 나가는 가족 앨범을 넘겨보고 있는 부모의 가만한 등을 볼 때와 비슷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사진이 갖고 있는 가치 중에는 ‘증명’해 주는 힘도 있을 것이다. 그 시간, 그 장소였을 때 찍은 세계는 다시 볼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 그 시간과 경험의 수집(蒐集)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앨범이겠지. 장롱이나 서랍장 깊숙한 곳을 한번 찾아보라. 우리는 모두 그러한 ‘자아의 책’을 한 권씩은 갖고 있다.

참, 앨범에 끼워 넣었던 것은 사진뿐만 아니라 신권이 나올 때의 지폐도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조경란 소설가
#앨범#사진#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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