氣 팍팍… ‘자존감 스터디’ 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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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 중심 ‘고민공유 모임’ 인기

“서울대에 진학했던 해에 상당한 자존감 하락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자존감 스터디에) 관심 있는 분이 있을까요?”

15일 서울대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 라이프’에 자존감 스터디 참여자를 모집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을 올린 서울대 졸업생은 “완벽주의에 시달리는 서울대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 자존감이 아닌가 싶다”고 모집 취지를 밝혔다. 자존감, 또는 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주로 성장기에 진학, 성적 등 지나친 성취를 강요받으며 잃어버린 자존감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조건을 가져도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모집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특목고 진학 후부터 자존감 하락을 겪어온 학생,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강박감을 갖고 있는 학생 등 10여 명이 지원했다. 이들은 두 달 남짓 매주 만나 자존감과 관련된 심리학 서적을 함께 읽고 토론하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림 그리기, 과거 사진을 보여주며 소개하기 등의 활동을 하기로 했다. 한때 취업 압박면접을 대비해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모욕 스터디’가 유행했던 것과는 정반대다.

회사원 강모 씨(30·여)도 직장인 10명이 심리학 서적을 함께 읽는 자존감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다. 강 씨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 참여하게 됐다”면서 “함께 책을 읽고 서로를 북돋워 주는 스터디 시간만큼은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업과 취업을 거치며 경쟁이 일상화한 피로사회에서 자존감이 떨어진 젊은층 사이에서 집단으로 고민을 공유하는 모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민을 토로하기보다는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로 잘 모르는 사람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익명으로 타인과 채팅이 가능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도 고민상담방이 200여 개 개설돼 있다. 자신에게 맞는 고민상담방에 들어가 친구에게 배신당했던 일 등을 털어놓으면 서로 응원해 주는 식이다. 최모 씨(27·여)도 “회사에서 팀장에게 혼났던 날, 고민상담방에서 사연을 말했더니 대나무숲에서 소리를 지른 것처럼 후련했다”고 말했다.

심리상담가인 정경진 자기성장심리연구소장은 지난해부터 소셜 다이닝 사이트인 ‘집밥’을 통해 10차례 집단상담을 진행해 왔다. 매번 11명씩 참여한 참석자는 대부분 20, 30대 학생이나 직장인으로 대인관계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 소장은 “참여자 절반 가까이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저마다의 고민을 털어 놓는다”며 “가까운 사람들에겐 어리광으로 비칠까 봐 꺼내지 못한 고민도 물꼬가 터진 듯 쏟아낸다”고 말했다.

이무석 전남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는 “쉽게 드러내기 어렵던 속마음을 공유하고 서로의 고민을 통해 위로를 받게 되면 자존감 문제 등도 쉽게 치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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