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짧은 글, 긴 여운’ 창비가 엮은 86편의 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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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박성우, 신용목 엮음/188쪽·1만 원·창비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영사기사 알프레도가 남긴 키스신 모음 같은 느낌이랄까.

책은 1975년 신경림의 ‘농무’를 1번으로 시작된 ‘창비 시선’이 400번을 맞아 나온 기념 시선집이다. 나희덕 문동만 강성은 시인을 비롯해 창비 시선 301번부터 399번까지 시인 86명의 시를 한 편씩 모았다. 모두 책 한 페이지 안에 들어가는 짧은 시다. 엮은이들은 “이를 두고 단시(短詩)라고 불러도 좋다. 독자들이 가능한 한 여유롭게 시와 마주 앉기를 바랐다”고 했다.

한 시인의 시집 한 권을 통째로 읽으며 깊은 숲길을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느낌은 얻을 수 없지만, 각 시집에서 촌철의 장면들만 모아 보는 맛이 있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새벽에 들어오는 아이의/추운 발소리를 듣는 애비는 잠결에/귀로 운다”(김주대 ‘부녀’)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이영광 ‘높새바람같이는’ 중)

숫기 없고 예민한 족속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썼을 ‘시인의 말’에서 발췌한 글을 읽는 재미도 시 본편 못지않다. “너무 속속들이 읽지는 마시고 곁눈으로 대강 훑어보시길 부탁드린다.”(권지숙) “시를 쓴다는 것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힘든 작업에 비해 소득이 적은 예술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이제껏 불평한 적이 없다.”(민영)

‘창비 시선’의 책 번호가 100번대 중반이던 20년 전 시집 한 권은 5000원 안팎이었다. 과자값은 그동안 열 배 가까이 오른 것 같은데, 시집 가격은 두 배가 됐다. 무더운 여름, 몰디브에는 가지 못해도 일상에서 ‘러스티 네일’(녹슨 못 또는 거친 발톱) 같은 감각을 체험하는 값으로는 너무 헐한 것 아닌지….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창비#박성우#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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