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병원 탓하고 조직-인력 확대 눈독…복지부, 메르스 사태 1년만에 백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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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보다 책임회피 급급

보건복지부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종료를 선언한 지 1년여 만인 29일 메르스 백서를 공개했다. 초기 혼란과 공포 확산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인력과 예산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일부 담겨 있어 “반성보다는 조직 확대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복지부는 지난해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 과정과 평가, 제언을 기록한 ‘2015 메르스 백서: 메르스로부터 교훈을 얻다!’를 발간했다. 473쪽 분량의 백서엔 지난해 5월 20일 메르스 환자가 처음 확인된 뒤 총 186명이 감염돼 38명이 사망한 과정의 기록이 담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설문한 전문가, 관계자 291명 중 절반 이상은 정부의 대응이 충분하지 않았고 위기소통도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며 ‘책임지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고, 초기엔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병원조차 공개하지 않아 혼란과 불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백서엔 지방자치단체 등에 혼란의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이 여러 차례 나온다. 지난해 6월 4일 서울시가 35번 환자와 함께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한 1565명을 격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백서는 당시 조치에 대해 “지자체와 정부의 정치적 권력 갈등을 내보여 보건 당국의 신뢰성이 훼손됐다”고 기록했다. 또 투명한 정보 공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언론에 대해선 “메르스 환자 증가 등 부정적인 정보를 주로 제공해 공포를 확산시켰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지적을 했다. 병원의 감염병 부실 대응을 지적하는 내용도 여럿 있었다.


옥상옥 보고업무 폭주…의심환자 추적 못하기도


“(격리 대상자가) 일부러 ‘나 지금 시장에 돌아다니니 잡으러 오라’고 해요. 그래서 찾아서 격리시키면 또다시 나가고….”

지자체의 한 방역 담당자가 회고한 메르스 사태다. 당시 지자체는 이처럼 의심 환자를 찾아내 격리하기에도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의 각종 보고서 요구에도 시달려야 했다. 메르스 발생 초기 질병관리본부 4개 과가 요청한 보고서는 ‘일일상황보고’, ‘의심환자 감시보고’ 등 매일 5건이었고, 이후 국민안전처와 경찰청 등 다른 부처에서도 보고자료 요구가 늘어나며 담당자의 업무가 폭주해 정작 격리 장소에서 이탈한 메르스 접촉자를 추적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보고 체계가 명확하지 않거나 중복 보고와 보고 대상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백서의 ‘교훈·제언’ 부분은 인력과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신종 감염병 유행 시 질병관리본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려면 인력을 일부 보강하거나 조직구조를 약간 바꾸는 정도를 넘어 ‘질병관리청’으로 독립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 내에 ‘의료기관 감염관리국’을 신설하고 각 지역에 ‘지방 공중보건청’을 세워야 한다는 제언도 적혀 있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 방역활동에 참여했던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메르스 사태가 벌어진 지 1년이 지난 뒤에야 나온 백서인데도 철저한 자기반성과 개선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편 복지부는 이날 메르스 치료와 방역에 기여한 안명옥 국립중앙의료원장과 김홍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등 39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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