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사랑스러운 그 아이, 장애가 아닌 가능성을 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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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아라벨라 카터-존슨 지음·노혜숙 옮김/392쪽·2만 원·엘리

아이리스는 붓을 쥐고 있는 동안에는 평소의 불안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윗옷 입는 것을 싫어해 해변에서 허리에 두르는 사롱을 망토처럼 묶고 그리기에 몰두하는 아이리스. 북하우스 제공
아이리스는 붓을 쥐고 있는 동안에는 평소의 불안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윗옷 입는 것을 싫어해 해변에서 허리에 두르는 사롱을 망토처럼 묶고 그리기에 몰두하는 아이리스. 북하우스 제공
책장을 스르르 넘기면 화사한 색채와 경쾌한 터치로 가득한 그림이 사이사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마음이 편안하고 따스해진다.

그림을 그린 소녀는 올해 일곱 살인 아이리스 그레이스. 아이 엄마인 저자는 말타기를 좋아하고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모험을 즐기는 영국 여성이었다.

집안의 첫 손주로 태어난 아이리스는 잘 자지 않았다. “다다”, “마마” 외에는 말하지 않고 같은 그네만 타길 고집하는 딸을 보며 엄마의 불안은 커져 갔다. 지난한 기다림 끝에 받은 검사 결과는 두 살인 아이가 자폐라는 것. 원인과 완치 가능성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질환이었다. 엄마는 “자폐는 밤도둑처럼 찾아와 소중한 뭔가를 훔쳐 달아났다”며 절규했다.

선진국인 영국에서는 자폐아에 대한 지원 체계가 비교적 잘돼 있을 것이라 여긴 기자의 예상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빗나갔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상대적일 순 있어도 어느 나라에서도 결코 쉽지 않다는, 잔인한 현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사설 유아원은 ‘자폐’라는 말만 들어도 대기자 명단을 닫아버렸고, 특수 보육원은 집에서 너무 멀었다. 유아원에서 다른 아이가 갖고 노는 기차장난감 소리에 자지러지는 아이리스를 안고 울면서 뛰쳐나와야 했다.

저자의 솔직한 서술은 자폐아를 키우는 일상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잠자고 말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보통의 아이가 자연스럽게 해나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아이리스에게는 높은 장벽을 넘는 것과 같았다. 신발을 신기는 데도 반나절이 걸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답 없는 질문을 끝없이 하며 지쳐 간다. 하지만 ‘비교는 부질없다.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마음을 다잡는 모습을 보며 강인함의 근원은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아이리스(위)와 단짝 고양이 툴라.
아이리스(위)와 단짝 고양이 툴라.
웨딩 사진가인 저자는 일과 육아를 함께하며 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연구했다. 자연과 음악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만의 교육 방식을 만들어 나갔다. 피아노를 들여놓고 전문가를 불러 언어교육, 음악치료를 하며 집에서 딸을 가르치고 정원과 숲속에서 마음껏 놀게 했다. 새끼 고양이 툴라와의 만남은 구원과도 같았다. 툴라는 아이리스와 함께 자고 눈을 맞췄다. 목욕시킬 때마다 할퀴며 달려드는 딸과 전쟁을 벌였지만 신기하게도 욕조 속으로 들어오는 툴라 덕분에 목욕도 수월해졌다. 딸의 미소 한 번에, 아빠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손짓 하나에서 희망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아이리스가 네 살때 그린 ‘바람속의꽃’. 제목은 엄마가 붙였다.
아이리스가 네 살때 그린 ‘바람속의꽃’. 제목은 엄마가 붙였다.
자폐아는 무언가에 매혹되면 완전히 빠져들어 상상력을 발휘한다. 크레파스와 물감, 붓은 아이리스의 재능을 폭발적으로 끌어냈다. 어마어마한 집중력으로 다채로운 색상을 사용해 예사롭지 않은 터치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 그림은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선사했다. 아이리스가 자기만의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쓰다듬어 준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세상으로 걸어 나온다. 마침내 지난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외삼촌의 결혼식에 참석하며 생애 첫 해외여행에 성공한다.

저자는 말한다. 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자폐를 가진 한 아이와 엄마의 성장일기이자 다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책이다. 지금도 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저자의 한마디가 귓가에 맴돈다.

“장애가 아닌 가능성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원제는 ‘Iris Grace’.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아이리스#아라벨라 카터 존슨#자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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