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속 검출된 우레탄 트랙 안전 강제기준 없이 학교 도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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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속 기준 법제화엔 귀 막고… “불임물질? 어떤 건지 몰라” 눈 감고


우레탄 트랙이 설치된 학교의 절반 이상에서 기준치 이상의 중금속이 검출돼 학부모들이 패닉에 빠졌다. 그 사이 아이들의 건강이 나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학교 외 놀이터나 공원의 고무 바닥재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져 가고 있다. 교육부는 안전 강제기준 등 우레탄 유해성에 대한 근본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부실 시공업체에 재시공을 맡길 방침이다.
 

▼ 우레탄 다시 깔겠다는 교육부 ▼

운동장에 우레탄이 깔린 전국의 학교 10곳 중 6곳에서 기준치의 최대 100배가 넘는 납 중금속이 검출되면서 학부모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2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문제가 있는 학교 1760여 곳의 우레탄을 모두 교체한다는 계획이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문제가 된 학교의 83%가 다시 우레탄으로 시공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부는 우레탄에 대한 중금속 기준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우레탄 안전 기준 강화를 검토 중인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 등 정부 방침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시 깔고도 예산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 교육부 “유해성 근거 없어 규정 안 만든다”

현재 전국 학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우레탄 트랙과 운동장은 정부 주도로 설치됐다. 우레탄 시설은 2000년 문화체육부가 생활체육시설 개선 사업을 펼치면서 학교에 도입됐다. 이후 교육부도 2006∼2011년 학교 운동장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우레탄 트랙을 깔았다.

당시 정부와 우레탄업계는 ‘흙과 먼지가 없는 미래형 운동장’, ‘무릎을 다치지 않는 안전 운동장’이라고 홍보했다. 공사업체는 대개 조달청을 통했기에 각 학교는 당연히 안전한 제품일 거라고 믿었다. 학교당 평균 4억 원에서 4억50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교육부 주도로 우레탄이 도입된 것은 2006년부터지만 우레탄에 대한 한국산업표준(KS)이 만들어진 건 2011년의 일이다. 그나마도 업계가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요구해 2012년 말에 KS가 실제로 운용됐다.

국표원 측은 “KS가 만들어지기 전까진 권고안 형태의 가이드라인에 의해 시공이 이뤄졌다”며 “가이드라인이든 KS든 임의 표준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레탄에 대한 KS를 어린이용품이나 학용품에 대한 안전기준처럼 ‘강제 기준’으로 만들려면 교육부 등 부처가 어린이 제품 안전 특별법과 같은 법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유해성에 대한 근거도 없고 업계 의견도 들어 보지 않은 상황에서 법제화를 논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우레탄 중금속 기준이 과다하게 설정된 면도 있어 현재 강제 기준 마련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표원은 “우레탄 트랙은 야외에 노출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부식되거나 갈라지고 고무 분말이 분출된다”며 “이 경우 호흡기로 직접 흡입되기 때문에 지금의 함량법으로 검사하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 놀이터 공원 고무판도 걱정

환경 전문가 등 일각에서 오히려 현재의 KS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중금속뿐 아니라 우레탄 내의 프탈레이트 성분에 대한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탈레이트는 제품을 부드럽게 하는 화학첨가제로 내분비계를 교란시켜 여성 불임, 정자 수 감소 등을 유발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실제 올 3월 환경부는 초등학교 우레탄 트랙을 조사한 뒤 프탈레이트의 일종인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가 다량 검출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국표원은 우레탄의 KS에 프탈레이트를 반영하는 논의를 시작했다. 국표원은 “곧바로 KS를 개정하려 했지만 교육부의 학교 우레탄 전수조사가 진행 중이라 혼란을 줄 수 있어 개정하지 못했다”며 “KS가 개정되지 않더라도 교육부가 당장 이번 여름방학 공사 계약서에 해당 조건을 명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KS에 없다고 해서 프탈레이트 가소제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며 “이 같은 뜻을 교육부에 전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교육부는 프탈레이트에 대한 고려 없이 현재의 중금속 기준만 갖고 교체 공사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우레탄을 다시 깔겠다는 건 학교의 선택이고 당장 교체를 하는 게 중요하다”며 “프탈레이트가 어떤 건지도 모르겠고 여러 가지를 다 따지면 설치를 못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문제가 된 우레탄 중 KS 마련 이후 시공된 것은 업체 측에 중과실 책임을 물어 재시공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무상이긴 하지만 결국 부실 시공을 한 업체가 다시 우레탄을 까는 것이어서 정부의 강력한 모니터링이 요구된다. KS 제정 이후 시공된 우레탄은 전체 부실 사례의 29.5% 수준이다.

나머지 70.5%에 대해선 기준 마련 전이라 배상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오롯이 정부 예산으로 시공해야 한다. 우레탄을 걷어내고 재시공하는 데는 학교당 평균 8400만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학부모 김모 씨는 “요즘 엄마들은 놀이터나 공원의 고무바닥도 불안하다고 얘기한다”며 “여름이면 심하게 냄새가 올라오는 이들 시설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과거 환경부 조사에서는 여름철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놀이터 고무바닥재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방출량이 증가하는 현상이 확인됐다. 또 해외 연구 사례에서는 고무바닥재 재료로 사용되는 타이어에서 납, 카드뮴 등 중금속 15종과 벤젠 등 39종의 VOCs가 확인됐다.

임우선 imsun@donga.com·노지원 기자
#우레탄 트랙#중금속#안전 강제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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