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실외기 2대 훔쳤는데… 檢, 父子 동시 구속영장,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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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집유중 절도, 父 기소유예 전력… 검찰 내부 이견속 “시민委 결정 수용”
위원 9명중 넷 “둘다 처벌”-불구속 ‘0’
법원은 아들 구속 영장만 발부

올 3월 20대 아들과 50대 아버지가 손수레를 끌고 인적이 드문 주택가를 오르고 있었다. 고철을 모아 고물상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해 온 한 씨 부자(父子)의 눈에 주택가 전봇대 앞에 놓인 에어컨 실외기 한 대가 들어왔다. 누군가가 버린 물건이라고 판단한 부자는 수레에 물건을 실고 고물상으로 향했다. 부자는 실외기를 넘기고 ‘보름 치 벌이’인 5만 원 남짓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이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씨 부자가 고물상에 넘긴 실외기는 누군가의 이삿짐이었다. 한 씨 부자는 300만 원 상당의 에어컨 실외기 2대를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5월 31일 피해 금액이 적고 가족이 단 둘뿐인 점을 들어 한 씨 부자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서울북부지검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구속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아들을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 외에 부자가 과거에 절도 혐의로 함께 기소유예를 받은 전력을 고려해 부자 모두를 구속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왔다. 또 부자가 연루된 흔치 않은 ‘가족 범죄’라는 측면에서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검찰은 일반인으로 구성된 검찰시민위원회에 판단을 의뢰했다.

그런데 시민위원회 논의에서는 예상과 달리 부자의 절도에 대해 강한 처벌을 원하는 의견이 다수였다. 시민위원 9명 가운데 한 씨 부자를 모두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4명)이 가장 많았고 재범한 아들만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3명, 범죄로 이끈 아버지만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2명이었다. 한 씨 부자의 사정을 감안해 불구속 수사를 주장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 있던 상황에서 반성은커녕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아들과 훈육의 책임이 있는 아버지가 함께 범행을 꾸몄다는 점에서 둘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검찰은 시민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최근 아들에 대한 구속영장은 발부하고 아버지의 영장은 기각했다. 아들은 집행유예 기간에 재범한 점 등을 고려해 도주와 재범 우려가 크다고 판단한 반면 기소유예를 받은 전력밖에 없는 아버지에게 아들과 같은 처분을 내리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이 때문에 검찰시민위의 의견과 이를 수용한 검찰의 처분이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에어컨#부자#강도#절도#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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