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 청와대는 뭐가 두려워 우병우 내치지 못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4일 23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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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출신 민정수석 쓰지 말라” 원조 친박 김용갑의 당부
神聖가족 중에서도 막강 검찰 0.01% 최상류계급 엘리트가 ‘국민 눈높이’ 알 턱 있나
사정기관 직통라인 심을 만큼 민심보다 두려운 게 무엇인가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서슬 퍼렇던 5공화국 때 ‘땡전 뉴스’를 없앤 사람은 김용갑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었다. TV 9시 뉴스가 “9시를 알려드립니다. 땡” 하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하고 시작된다고 대통령에게 알려주면서 “각하, 국민들이 땡전만 나오면 TV 꺼버립니다” 직언을 했다. 대통령이 불쾌해하기는커녕 그럼 민정수석이 조치하라고 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원로 친박인 7인회 멤버였던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들어가기 전 만날 때마다 “민정수석만 잘 고르면 성공한다”며 “절대 검찰 출신은 민정수석에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고위직 인사검증부터 공직기강, 민심 동향까지 가감 없이, 대통령이 싫어해도 전해야 하는데 상명하복 문화에 길들여진 검찰 출신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청개구리 대통령’은 현재 우병우 민정수석까지 4명을 모두 검사 출신으로 앉혔다. 그것도 특수통(곽상도, 우병우) 아니면 공안통(홍경식, 김영한)이고 3명의 전직 모두 1년도 못 채우는 기록을 남겼다. 우병우 역시 사정은 잘할지 몰라도 “요즘 대통령이 TV에 나오면 시청률 떨어진답니다”는 식으로 민정을 가감 없이 전할 것 같진 않다. 김용갑이 이유로 꼽은 상명하복의 검사 문화도 있겠지만 우병우쯤 되면 대한민국 0.01%의 최최상류계급에다 검찰 출신 ‘신성가족(神聖家族)’의 최고 실세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동저작 ‘신성가족’에서 제목을 따온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패밀리가 사는 법’을 쓴 김두식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신성가족이란 불경스러운 대중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 끝에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된 사람들을 뜻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하면 판검사 집단이다.

‘인간성에 대한 조직적 파괴 과정’인 사법시험을 통과해 최소한 강남의 30평 아파트를 지참한 외모, 집안 빵빵한 여성과 결혼한 그들은 설령 개천에서 났대도 절대 개천을 돌아보지 않는다. 젊은 나이에도 뒷짐 지고 걷는 검사들이, 더구나 별명이 ‘깁스’였다는 우병우가 바닥 삶과 민심을 알 리 없다. 신성가족끼리의 청탁은 너무나 순수하기에 장모님이 땅을 팔 때 가서 위로해 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번 신성가족이면 퇴직해도 신성가족이므로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변호사 5개월 동안 16억 원 번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납득을 못 한다.

박근혜 정부의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이 하는 족족 ‘국민 눈높이’와 안 맞고 앞으로도 맞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엘리트 카르텔’의 특권의식 서열의식 연고주의가 DNA에 박힌 민정수석이 청와대를 지키는 한, 전관예우는 안 없어진다. 검사들의 막강 권력을 분산시켜 부패와 검찰의 정치화를 막을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 검경 수사권 조정도 거의 불가능하다. 오죽하면 2012년 대선 직전 “일단 박근혜가 될 것이고 공수처 공약은 없다”는 윤대해 검사의 문자메시지가 파문을 일으켰겠는가.

온갖 의혹이 쏟아지는데도 청와대가 우병우를 내치지 못하는 것은 사정기관 곳곳에 심은 ‘직통라인’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박 대통령은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 검사의 외부기관 파견 금지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검사 사표를 내게 한 뒤 청와대에서 일하다가 복귀시키는 적폐를 계속하는 것도 비정상인데 잠시 한직으로 돌리는 염치도 없이 최고 요직으로 영전시키는 건 “청와대에 충성하라”고 꽹과리 치는 것과 같다. ‘김영란법’의 주인공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은 검찰 권력의 비대화를 막으려면 중수부보다 직통라인을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병우는 직통 쇠심줄을 만들어낸 거다.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권력이어서 있는 혐의를 없는 것으로, 없는 혐의를 있는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검찰이 나는 두렵다. 청와대는 대체 무엇이 그리 두렵기에 검찰을 장악해 ‘사정 정국’을 성장동력 삼아 통치를 하려는지는 더 궁금하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국민보다 검찰을 더 믿는 듯한 모습도 보기 딱하다.

청와대에 들어오자마자 검찰과의 핫라인을 끊은 것이 노무현 정부였다. 대선자금 수사 보복이라는 인상을 줄까 봐 중수부 폐지는 못 했다지만, 그리고 이념 문제 때문에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이 양보 못할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노 정부는 검찰의 탈(脫)정치화,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초기에는 진심으로 추진했다. 나도 내가 노 정부를 평가하는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청와대#우병우#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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