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정신]효성 지극했던 일연국사… 삼국유사도 효도 이야기로 마무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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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국사와 삼국유사

일연국사
삼국유사 9편의 마지막은 부모를 위한 다섯가지 효도 이야기를 담은 ‘효선(孝善)’ 편이다. 일연국사는 지극한 효성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경북 경산에서 아버지 김언필(김언정)과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일연(어릴 때 이름은 견명 또는 현명·見明)은 9세 때 집을 떠나 호남지역 무량사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14세에 강원도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됐다. 22세에 승려의 과거시험인 선불장(選佛場)에 합격한 뒤 대구 달성 인홍사, 남해 정림사, 강화 선월사, 포항 오어사, 청도 운문사 등에서 지냈다. 41세에 선사(禪師), 54세에 대선사(大禪師)가 됐다.

73세 때 인홍사에서 삼국유사의 기초자료가 되는 ‘역대연표’를 펴냈다. 삼국유사가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저술된 것을 알 수 있다.

78세 때 승려 최고 지위인 국사(國師)가 됐지만 충렬왕에게 수차례 건의하여 그해 고향 쪽으로 내려왔다. 노모를 가까이서 모시기 위해서였다. 79세에 인각사에 주석하면서 어머니를 모셨지만 어머니는 다음해 96세로 별세했다. 어머니는 19세에 일연을 낳고 77년을 홀로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일연국사가 삼국유사를 완성한 군위 인각사.
일연국사가 삼국유사를 완성한 군위 인각사.

일연은 제자들과 삼국유사를 완성한 뒤 84세 때인 1289년 음력 7월 8일 입적했다. 시호는 넓게 깨달았다는 뜻으로 보각(普覺)이다. 추모탑 이름은 고요하게 밝힌다는 뜻으로 정조(靜照)이다. 인각사에 남아 있는 보각국사비(보물 428호) 4000여 자 가운데 판독 가능한 400여 자가 2006년 확인됐다. 비문의 마지막은 “겁화가 거세게 일어나 온 산하를 불태우더라도 이 비석은 남아 없어지지 않으리라”로 적혀 있다. 당시 원나라 몽고의 침략으로 비참했던 상황에서 삼국유사를 통해 민족의 주체성을 세우고 미래를 열려고 했던 일연의 마음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보각국사비는 탁본 등을 근거로 복원돼 일연국사 탄신 800주년인 2006년 인각사에 세웠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일연국사#삼국유사#인각사#경북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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