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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획]의대 박차고 떠난 전쟁터… “고마워요, 닥터” 한마디에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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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획]의대 박차고 떠난 전쟁터… “고마워요, 닥터” 한마디에 눈시울

김수연기자 입력 2016-07-16 03:00수정 2016-07-16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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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캠프서 활약 ‘국경없는의사회’ 이재헌씨
6월 중순 시리아 국경 인근 요르단 람사 지역의 한 병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 이재헌 씨(38·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환자와 대화하고 있다. 병상에는 시리아 내전으로 다친 어린이가 다리에 붕대를 감고 앉아있다. 이 씨는 국경없는의사회(MSF) 소속으로 4월부터 두 달간 이곳에서 심한 외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아시아 서쪽 끝에 자리 잡은 인구 1795만 명의 나라 시리아. 한때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리적 요충지였던 이곳은 지금은 ‘전쟁’과 ‘난민’의 대명사로 변했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민주화 바람을 타고 시작된 정부와 반군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한 동쪽 지역은 유엔군의 폭격이 이어진다.

지난 5년간 사망한 사람은 250만 명. 이 죽음의 땅에서 꺼져 가는 생명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 위해 부와 명예를 버린 사람들이 있다. 199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국제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MSF)’ 의료진이 주인공이다.

한국의 정형외과 전문의 이재헌 씨(38)는 의대 임상 조교수라는 안정적인 자리를 버리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두 달 동안 임무를 마치고 6월 말 귀국한 그를 만났다. 그가 목격한 시리아의 참상, 전장에서도 꽃핀 인간애를 이 씨의 목소리로 재구성했다.

열사(熱沙)의 땅에 서다

요르단에 도착한 4월 18일.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코로 훅 들어와 순간적으로 숨을 쉬기 어려웠다. 도시를 메운 회색빛 건물, 알 수 없는 아랍어 간판, 중동 특유의 향내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중 나온 현지 스태프의 차에 올라타니 조수석에 서류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휴대전화와 숙소 열쇠, 그리고 나의 임무가 적힌 안내문…. ‘감금과 납치를 조심하라. 국경없는의사회는 테러 단체에 협상금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글이 적힌 안내문을 읽으며 IS의 영향권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차는 요르단과 시리아 국경에서 5분 거리인 람사를 향해 달렸다. 총탄이 빗발치는 시리아 내부에선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MSF는 이곳 람사의 국영병원에 둥지를 틀고 국경을 건너온 시리아 난민과 환자들을 받는다.


치료를 위해 국경을 통과할 정도의 환자라면 외상이 보통 심한 게 아니다. 골절, 화상은 기본이고 다리를 잘라내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위급한 환자라도 신원조회를 거치지 않고는 국경을 통과할 수 없다. 환자들은 반나절에 걸친 검문·대기 시간을 보낸 뒤 요르단 람사에 들어온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족은 따라올 수 없다. 람사 병동엔 이렇게 가족과 생이별하고 혼자 국경을 건너온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첫 환자는 17세 시리아 여성이었다. 담요를 덮고 수줍게 웃는 모습은 영락없는 소녀였지만, 담요 아래엔 반쯤 잘려나간 두 다리와 만삭의 배가 숨겨져 있었다. 임신 7개월인 그녀는 마당에서 빨래를 하다가 폭탄 파편에 맞아 두 다리를 다쳤다.

고름이 가득 찬 그녀의 다리를 절단하고 살을 동여매는 수술을 여러 번 반복했다. 임신 중이라 쓸 수 있는 약이 제한돼 치료가 쉽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그녀는 회복했고 예정일보다 조금 빨리 자연분만으로 딸을 낳았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꽃처럼 태어난 귀한 생명에 나를 포함한 의료진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어린 산모는 아기를 안고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었다. 잘려나간 다리를 보며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복받치는 울음을 몇 번이나 삼켰다.

여덟 살 아이 라만(가명)도 폭격으로 팔 가죽이 뜯기고 골절이 된 상태로 혼자 실려 왔다. 그는 여러 번 수술을 받고 난 뒤 살점 없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자기 팔을 볼 때마다 자지러지게 울었다. 하지만 이 작은 아이의 칭얼거림을 받아줄 부모는 곁에 없었다. 엄마 대신 간호사들에게 안겨 어리광을 부리며 칭얼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5년 동안 국경 너머 시리아에 갇힌 사람들은 이렇게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었다. 차로 몇 분만 달려오면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상처 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는 걸 시리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인간이 만든 경계선 하나로 삶의 모습은 극단으로 갈렸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치료를 받고 살아난 환자 중 일부는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길 원한다. 남겨진 가족과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전쟁마저 갈라놓지 못할 그들의 사랑에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간혹 ‘다시 싸우기 위해 시리아에 간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총탄에 맞아 죽음 직전까지 갔던 이들이 다시 총을 잡겠다는 것이다.

어느 날엔가 한 남성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받은 적이 있다. 아랍어로 된 이름, 시체 사진으로 가득한 페이스북…. 왠지 낯익은 이 남성은 누굴까. 아, 그는 내가 돌보던 환자였다. 넙다리가 절단돼 내 손으로 치료했던 청년. 겉보기엔 한없이 유순한 젊은이였는데, 페이스북엔 그가 ‘저격수’라고 돼 있었다. 그것이 장난인지, 참말인지 모르겠지만 ‘저격수’라는 문구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처럼 전쟁터라는 특수한 공간에선 여러 환자를 만난다.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이 대부분이지만 총부리를 겨누다가 온 이들도 있다. 전쟁터에서 이들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뉜다. 하지만 병원에선 다 같은 환자일 뿐이다.

신분에 따라 환자를 차별하지 않는 ‘중립성’은 MSF가 추구하는 원칙 중 하나다. 환자가 총을 쥔 사람이건, 그 총에 다친 사람이건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들이 살아서 가족 품에 안길지, 전쟁터로 다시 뛰어들지 나는 모른다. 어느 편에 선 인간이건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현장의 MSF 활동가들은 이 원칙 아래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다. 국경을 통과할 때 무력 분쟁에 가담했던 사람들에겐 ‘레드 플래그(red flag)’ 꼬리표가 붙지만,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들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시리아에 평화가 깃들 날 오길

MSF는 수요일마다 국경 근처 최대 규모의 난민촌인 ‘자타리 캠프’에 외근 진료를 나간다. 내전이 계속되자 4년 전부터 이곳에 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약 13만 명이 모여 사는 마을이 됐다. 사막 허허벌판에서 사람들은 배우고, 먹고, 잠을 잔다. 평화 대신 전쟁이 일상이 돼버린 저주받은 땅, 임시천막에서 일상을 꾸려 가는 이들의 모습이 더없이 슬프게 보였다.

시리아에서 정부군과 반군의 시가전이 벌어질 땐 MSF 의료진도 만반의 준비를 한다. 응급 환자들이 이송되기 때문이다. 요르단에 정착하고 난 뒤 나는 시리아 언덕의 석양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다가 ‘부움∼퍽’ 하는 폭발음을 들은 적이 있다. 시리아 남부의 다라에서 폭탄이 터진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 환자들이 밀려올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환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심각한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오는 길에 전원 사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르단을 떠나기 이틀 전엔 상황이 더 악화됐다. 요르단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차량을 폭파해 경찰 6명이 사망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국경이 완전히 닫혔다. 응급 환자를 받기 위해 수술실을 새로 정비했지만 환자들이 올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5분만 달려오면 살 수 있는 환자들이 국경을 넘지 못한 채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고 추락하는 것만큼 두려운 건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희망이라는 게 있을까. 뜨거운 라마단의 태양 아래 잠시 서 있는 것도 힘든데, 이 하늘 아래서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국경 넘어 시리아인들의 고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렇게 두 달 동안의 내 임무는 끝이 났다. 패혈증이 심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13세 꼬마도, 총탄에 무릎 아래가 날아가 버린 23세 처녀도 건강을 되찾은 얼굴로 “슈크란(고마워요), 닥터 제프”하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의 다음 목적지는 2010년 전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아이티’다. 또 다른 재난의 땅에서 시리아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깃들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서류-면접 거쳐 3만3000명 구호활동… 한달 활동비 100만원선▼
 
45년 역사 ‘국경없는의사회’는…

 

국경없는의사회(MSF) 소속으로 남수단과 요르단에서 근무했던 박선영 간호사(29)는 “현장엔 내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늘 가슴이 뛴다”며 “이것이 전쟁터에서의 두려움과 불편함을 이겨낸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국경없는의사회(MSF)’는 1971년 나이지리아 내전과 파키스탄 홍수 사태를 계기로 프랑스인 의사와 언론인이 모여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에서 모인 3만3000여 명이 MSF 유니폼을 입고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60여 개국 사람들을 위해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다.

MSF는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약사, 행정 전문가 등 현지에 필요한 모든 인력을 선발한다. 한국에선 지난 한 해 동안 총 16명의 활동가가 12개국에 파견됐다.
 

구호 활동이라고 해서 무급 자원봉사를 생각하면 안 된다. 서류 심사는 물론이고 1, 2단계에 걸친 면접을 통과해야 활동가 자격을 얻는다. 지원자는 의학적 지식, 가치관, 스트레스 대처 능력 등 다양한 측면을 평가받는다. 아무리 의욕이 넘쳐도 현장에서
일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선발되지 못한다.

지난해 남수단(6개월), 올해 요르단(2개월)에서 활동한 간호사 박선영 씨는 MSF 활동가가 되기 위해 재수를 해야 했다. 첫 도전에서는 영어 실력이 부족해 면접에서 탈락했다. 박 씨는 “수술방 간호사 근무를 끝내고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며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고 재수 끝에 선발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MSF로부터 소정의 급여를 받는다. 현지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처음 시작하는 활동가의 경우 월 100만 원 정도다. 현지 숙소와 식사, 이동 경비 등은 MSF가 제공한다. 한 지역에서 임무를 끝내고 다른 지역으로 배치되기까지 쉬는 동안에는 무급이 원칙이다. 그래서 봉사정신이 없다면 하기 쉽지 않다. 그 시간에 자기 나라의 병원에서 일하면 안정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지만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MSF가 내세운 활동 원칙 중 하나는 독립성이다.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해관계를 떠나 현지 사람들의 필요에 대한 독립적인 평가에만 근거해 구호 활동 여부를 결정한다. 이 때문에 기금의 대부분도 기업이 아닌 개인 모금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연간 수입은 1조8142억 원이고 지출은 1조6119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MSF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환자는 59만8600명, 외과 치료를 받은 사람은 10만6500명에 이른다. 극심한 기근, 재해, 전쟁의 환경 속에서도 MSF 의료인들의 도움으로 24만3300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국경없는의사회#msf#구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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