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앓는 아버지 시점 전개… 극 몰입도 높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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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엔지니어였지만 치매를 앓으면서 전직 댄서라고 우기는 아버지 앙드레(박근형)와 그런 아버지를 웃음으로 대하는 딸 안느(김정은). 국립극단 제공
엔지니어였지만 치매를 앓으면서 전직 댄서라고 우기는 아버지 앙드레(박근형)와 그런 아버지를 웃음으로 대하는 딸 안느(김정은). 국립극단 제공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2012년)의 주인공 이적요가 읊었던 명대사다. 젊음과 늙음의 잣대로 누군가는 오만하고, 누군가는 움츠린다. 누구나 거쳤고, 누구나 거칠 젊음과 늙음인데 말이다. 8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아버지’ 역시 늙어가는 인간의 슬픔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늘 파란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있는 주인공 앙드레, 나이는 80세다. 젊을 땐 잘나가는 엔지니어였고, 고집 세고 무서운 아버지였다. 치매를 앓게 되면서 점점 아이처럼 변해간다.

딸 안느는 그런 아버지가 안타깝고 한편으론 부담스럽다. 동거하는 남자친구가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자고 설득할 때 안느의 가슴은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머리로는 ‘양로원이 답이 될 수도 있다’며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런 안느와 앙드레 부녀의 모습에서 관객은 눈물을 훔친다. 한 편의 연극이지만 이미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거나 앞으로 겪을 가능성이 높은 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특이한 건 극의 시선이다. 치매를 앓는 노인을 묘사한 작품은 많았지만, 대개는 주변인들의 시점에서 자꾸 과거를 잊어버리거나 자신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노인의 모습을 강조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치매를 앓는 아버지의 1인칭 시점으로 풀어 나간다. 그 때문에 관객 입장에선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이상한 게 아니라, 자꾸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우기는 딸의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의 생각대로 극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단호하게 자신은 정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사라져가는 기억 앞에 불안감을 느끼는 앙드레 역을 맡은 배우 박근형의 밀도 있는 연기는 극의 몰입을 한층 높인다. 그래서일까. 그의 해맑은 미소와 동시에 비치는 불안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다.

8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44-2003 ★★★★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아버지#박근형#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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