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농구 꿈나무 발굴’ 사업 계속돼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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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스포츠부 차장
이승건·스포츠부 차장
“농구는 하드웨어 게임이다.”

농구 관계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재능과 실력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갖췄어도 ‘하드웨어’(키)에서 뒤지면 경쟁력에서도 뒤지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농구가 1996년 애틀랜타 대회를 마지막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는 것도 하드웨어 탓이 크다.

남자농구가 올림픽 본선은 고사하고 아시아경기에서조차 처음으로 메달을 따지 못한 ‘2006년 도하 참사’가 벌어진 이듬해 한국농구연맹(KBL)은 스포츠토토 지원금을 활용해 ‘장신자 발굴 육성 사업’을 시작했다.

3년 동안 훈련 보조비와 농구용품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전국 각지에서 키 크다는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KBL은 신청자들의 성장판까지 검사했다. 당장 키가 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선택받은 아이들은 정식 선수로 등록해 농구를 했다. 평소에는 소속 학교에서 뛰다 방학 등을 이용해 KBL이 마련한 캠프에서 유명 지도자들의 강습도 받았다. 떡잎부터 알아보고 관리한 덕분에 많은 아이들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겸비한 재목으로 커 갔다.

남자농구 17세 이하 대표팀이 지난달 29일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17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꺾고 8강에 올랐다. 성인을 포함해 한국 남자농구가 FIBA 주관 대회 8강에 진출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나란히 18점을 넣으며 승리를 이끈 양재민(17·경복고·198cm)과 신민석(17·군산고·197cm)을 포함해 대표팀 12명 가운데 4명이 KBL의 사업을 통해 농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지난해 고졸 신인으로 KCC 유니폼을 입은 송교창(20·201cm)도 이 사업의 원년 수혜자다.

다른 종목 관계자들로부터 “농구가 키 좀 크다는 아이들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시기까지 받게 했던 이 사업은 10년도 채우지 못한 채 2012년을 끝으로 ‘발굴’을 중단했다. 애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원’은 2014년까지 이어졌다.

‘발굴’이 중단된 것은 스포츠토토 지원금 체계가 바뀌어서다. 이전까지는 KBL이 지원금을 활용해 유소년 사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원금 체계가 바뀌면서 프로 구단을 주관하는 단체는 아마추어 엘리트 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KBL 관계자는 “미래를 바라보고 애정을 쏟은 사업이었는데 더는 할 수 없게 돼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독일 축구는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에서 조별리그 탈락(1무 2패)의 수모를 겪자 2001년부터 분데스리가 클럽들이 유소년 아카데미를 의무적으로 육성하게 하는 등 ‘축구의 미래’로 눈을 돌렸다. 독일이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엔트리 23명 가운데 22명이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이었다. 확고한 의지를 갖고 10년 이상 뚜벅뚜벅 유망주를 키운 덕분이었다.

지금의 17세 이하 대표팀은 오랜만에 남자농구에 등장한 ‘황금 세대’다. 하지만 뒤를 이을 또 다른 황금 세대가 없다면 이번 쾌거는 ‘반짝 돌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포기하다시피 한 남자농구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신자 발굴 육성 사업이 하루빨리 부활해야 한다. 누가 이 사업을 맡을 것인지는 나중 문제다.
 
이승건·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농구#농구 꿈나무#유소년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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