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뉴욕 노상살인사건 누명 벗은 ‘38명의 방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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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목격자들 대여섯명에 불과” 보도 추적한 다큐영화 진실 밝혀

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경 미국 뉴욕 퀸스 주택가에서 29세 여성이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흑인 남성에게 노상강도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격렬히 저항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집 앞까지 끌려가 칼에 찔려 숨졌다. 경찰이 신고를 받은 것은 여자가 죽은 지 20분이 지나서였다. 여성 피해자의 이름은 키티 제노비스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심층 취재해 그해 3월 27일자 1면 톱기사로 내보냈다. ‘살인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37명’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숫자 ‘37’은 이후 속보에서 ‘38’로 바뀌었고 ‘38명의 목격자’는 이웃의 비극에 무관심한 차가운 도시인의 상징이 됐다. 심리학 교재에 빠지지 않고 실리면서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도 약해진다는 ‘책임감 분산 효과’ 또는 ‘방관자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신고 전화가 911로 일원화됐다.

이후 키티 제노비스라는 이름은 불운의 대명사가 됐다. 남동생 빌 제노비스는 2년 후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누나의 비극을 잊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들은 해병대원은 반사적으로 “제노비스? 키티의 동생?”이라고 물었다.

베트남전에 파병돼 두 다리를 잃은 빌은 부상을 입고 홀로 베트남 논바닥에 쓰러졌을 때 외롭게 죽어갔을 누나를 떠올리고 오열했다. 하지만 빌은 그렇게 죽도록 버려지지 않았다. 전우들이 목숨을 걸고 그를 구해낸 것이다.

사건 발생 40년이 지난 2004년 NYT는 해당 보도가 일부 과장됐다고 밝혔다. 빌은 그제야 누나의 죽음의 진실을 찾아 나섰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제임스 솔로몬은 그 과정을 ‘목격자’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29일 이 영화와 빌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당시의 정황을 전했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목격하거나 들은 사람은 대여섯 명에 불과했다. 이 중 한 명은 “여자를 내버려 둬”라고 범인을 향해 외쳤다. 경찰 기록엔 나오지 않지만 2명 이상이 경찰에 신고했다. 소피아 파라라는 여성이 키티에게 달려와 숨을 거둘 때까지 곁을 지켜줬다. 이웃의 죽음을 방관했던 38명은 없었던 것이다. 당시 NYT 사회면 담당 에디터였던 A M 로즌솔도 38명이란 숫자는 근거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이 보도의 공익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빌은 이렇게 말했다. “머릿속 헛소리를 현실처럼 만들어내면 사람들은 그걸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면서 그럴 만하다고 믿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게 진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립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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