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남다르게… ‘저임금’ 대신 숙련기술로 승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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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 의류 OEM업체 호전실업의 성공전략

호전실업의 관계사인 호전리테일의 사이클웨어 브랜드 ‘얼바인’.
호전실업의 관계사인 호전리테일의 사이클웨어 브랜드 ‘얼바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의류 수출기업인 호전실업은 일반 스포츠웨어에 비해 생산관리가 어려운 스포츠 팀웨어(팀별로 똑같이 입는 유니폼) 생산에 특화된 업체다. 다운재킷, 낚시복, 사냥복 등 높은 기능성을 요구하는 아웃도어 의류도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나이키, 아디다스, 언더아머 등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는 물론이고 노스페이스, 버그하우스 등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모두를 거래처로 확보하고 있다.

1985년 직원 두 명으로 출발한 호전실업은 현재 국내외 직원 수만 1만7000여 명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2016년 5월 기준 인도네시아에 6개 공장, 베트남에 1개 공장(임대)을 각각 운영 중이다. 지난해 2969억 원의 매출액(연결재무제표 기준)에 250억 원의 영업이익(영업이익률 8.4%)을 올렸다. 10년 전인 2005년(개별재무제표 기준 매출액 1091억 원, 영업이익률 1.4%)에 비해 규모는 2.7배로 늘고 수익성은 6배나 높아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OEM 업체로 성장한 호전실업의 성공 요인을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분석했다.

○ 사업 초기부터 장기적 관점에서 국제화 추진

호전실업은 1991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공장을 설립하며 해외 생산기지 구축에 일찌감치 나섰다. 호전실업이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국과 더 가까운 중국 대신 인도네시아를 택한 이유는 우수 인력 확보 가능성 측면에서 인도네시아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용철 호전실업 회장은 “제아무리 중국의 인건비가 낮아도 공업화가 진척되면 임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며 “게다가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속도를 감안할 때 봉제업에서 우수 인력이 빠져나가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 관점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당장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보다 숙련된 기술공들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봤고 그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공업화 수준이 낮은 인도네시아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 틈새시장인 ‘스포츠 팀웨어’ 분야 공략

2000년대 초반 호전실업은 나이키로부터 “대학 농구팀에 후원할 스포츠 팀웨어를 제작해 줄 OEM사를 찾고 있는데 한번 해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주문 물량(4억 원어치)은 적었지만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와의 계약인 만큼 흔쾌히 요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스포츠 팀웨어 생산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대개 ‘소품종 대량 생산’ 방식으로 제작되는 일반 트레이닝복과 달리 ‘다품종 소량 생산’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타일이 같은 점퍼 하나를 만들더라도 학교마다 대학명과 로고, 심벌, 색상이 달라져야 한다. 심지어 등판에 새겨지는 선수들의 이름이나 고유 번호에 이르기까지,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할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최문수 호전실업 이사는 “학교 이름이나 선수 이름이 제대로 새겨지지 않은 경우는 물론이고 A학교에 납품해야 할 셔츠에 B학교 로고가 찍히는 등 생각지도 못한 자잘한 문제들이 수시로 발생했다”며 “특히 외주업체에 맡겨 진행하던 프린팅이나 자수 단계에서의 불량이 많아서 초창기 나이키에 의류를 납품할 때는 고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호전실업은 바로 여기에서 시장 기회를 찾았다. 박용철 회장은 “팀웨어가 대부분 OEM 회사들이 꺼려하는 주문이었기 때문에, 10여 년 전 별로 인지도도 없었던 호전실업에까지 주문이 들어왔던 것”이라며 “팀웨어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다면 호전실업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호전실업은 2005년 아예 공장에 자수설비와 프린트 기계를 도입하고 생산 공정을 개편했다. 스포츠 팀웨어의 핵심 경쟁력은 자수 및 프린트 공정의 품질관리에서 좌우된다는 것을 간파하고 봉제·자수·프린트 공정을 한데 통합시킨 것. 그 결과 호전실업은 현재 연간 250만 장의 스포츠 팀웨어를 생산할 정도로 전문적 역량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 대단위 설비 투자로 기능성 아웃도어 시장 진출

호전실업은 또 아웃도어 시장 진출을 위해 2005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아웃도어 브랜드 컬럼비아에 OEM 납품을 하던 20년 된 현지 봉제공장을 인수했다. 박 회장은 “공장 설비는 자본만 있으면 얼마든지 교체 가능하고 쉽게 구축할 수 있지만 숙련된 노동력은 돈이 있더라도 단기간에 확보하기가 어렵다”며 “기능성 아웃도어 생산을 위해서는 숙련공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인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전실업은 2008년 또 다른 아웃도어 전용 공장을 세우고 해마다 라인 증설을 계속해 나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모두가 투자를 꺼려하는 상황 속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지속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웃도어 의류는 대단위 투자가 필수다. 예를 들어 간단한 티셔츠는 재단물이 앞판, 뒤판, 양쪽 소매 및 목 부분 등 크게 5조각밖에 안 되지만 복잡한 다운재킷의 경우 재단물만 200조각에 달하고 340여 개의 크고 작은 공정을 거쳐야 완제품이 만들어진다. 아웃도어 전문 업체로 거듭나기 위해 호전실업이 무리해 가면서까지 투자를 멈추지 않은 이유다. 호전실업의 공격적 투자를 보고 당시 주변에선 “무모한 도박이다” “망하려고 작정을 했다”는 등 우려가 컸다. 하지만 박 회장은 “봉제 산업에서도 조만간 대형업체 위주로 승자 독식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투자를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제적 투자로 인해 2005년 이후 1000억 원대 매출액에서 몇 년간 제자리걸음을 하던 호전실업은 2009년 매출액 2000억 원을 돌파하며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서게 됐다. 2007년 노스페이스와 거래한 첫해 납품 물량은 3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2015년 6500만 달러로 8년 만에 20배 정도 물량이 늘었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호전실업은 ‘저임금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 경쟁하려는 대다수 의류 OEM 업체들과 달리 ‘숙련된 노동력’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역발상 전략을 추구했다”며 “특히 봉제·자수·프린트 공정을 통합시킨 ‘원스톱’ 생산 체제를 구축한 점이나 아웃도어 생산 경험이 있는 현지 공장을 인수하는 등의 의사결정은 호전실업이 고기능, 고부가가치 상품에 집중할 수 있는 차별적인 경쟁 우위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향후 호전실업은 지속적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생산라인의 표준화 및 자동화에 힘써 2020년까지 매출액 5000억 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이 기사의 전문은 DBR 203호(2016년 6월 15일자)에 게재돼 있습니다.
#dbr#의류 oem업체#호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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