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자서평]노인이 낚으려던 간절한 꿈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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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베스트트랜스 옮김/288쪽·6600원/더클래식

지난 일주일 동안 442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노인과 바다’는 신문기사로 치면, 기삿거리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 어떤 기자도 ‘인생에서 가장 큰 청새치를 낚다 실패한 노인’이라고 기사 제목을 뽑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고전으로 남는 이유는 이 흔한 실패담을 우아하게 바다에서 육지로 낚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산티아고는 아바나의 늙은 어부다. 고기를 낚지 못하는 늙은 어부에게 소년을 제외하고는 관심을 가질 리 없다. 야윈 몸과 수십 년간 타 들어간 피부는 이제 더 이상 이 노인네는 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 암시쯤으로 보인다. 그래도 그는 출항한다. 젊은 시절 산티아고에게는 바다에 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나가기도 했을 것이고, 큰 물고기를 잡겠다는 욕망, 때론 가족의 잔소리에 떠밀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늙어 버린 산티아고에게는 물고기에 대한 욕망이나 배고픔은 시간의 풍화작용에 오래전에 퇴색해 버렸을 터. 미풍 부는 멕시코 만의 어딘가에서 그가 낚으려던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자신의 꿈이었을 것이다.

노인은 낚싯줄이 팽팽해지다 끊어지기 직전에 줄을 풀고, 멀리 가는 듯하면 다시 낚싯줄을 감는다. 낚싯줄 위에서 긴장은 줄타기를 한다. 뛰어오르다 착지하고, 가라앉는 듯하다가 다시 뛰어오른다. 노인과 청새치의 힘겨루기는 사냥이라기보다는 춤처럼 보였다. 4일 밤낮의 춤사위가 끝나 마침내 청새치가 가까이 왔을 때 노인은 작살을 꽂는다. 작살이 청새치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노인은 작살이 청새치의 피부를 꿰뚫은 것을 느끼고 다시 한번 전력을 다해 작살을 심장으로 밀어 넣는다. 여윈 몸과 피부암을 가진 늙은 어부의 작살은 본능이었다. 출항의 본능. 낚시의 본능.

늙은 어부는 인생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수십 년간 해오던 일에도 새로이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알려준다. 노인이 위대한 것은 매일 출항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매일 출항이라는 권태 속에서도, 새롭고 살아있는 배움이 있다는 것을 몸소 알려주는 데 있지 않을까.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이렇게 우리를 일깨운다.

신효섭 제주 제주시 노형동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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