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수업도 EBS 교재로”… 교실서 밀려난 교과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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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교재 만능주의

고교 현장에서 교과서 대신 EBS 교재에 의존하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공교육이 부실해진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이 EBS 교재를 쌓아놓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고교 현장에서 교과서 대신 EBS 교재에 의존하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공교육이 부실해진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이 EBS 교재를 쌓아놓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고교 3학년 교실에서 교과서를 밀어낸 EBS 교재 만능주의가 최근 고 1, 2학년으로 번지면서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학생들이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에 대비하기 위해 고1부터 스펙 관리에 매달리는 대신 수능 부담을 줄이려고 EBS 교재를 선호하면서 엉뚱한 ‘나비효과’가 생기고 있는 것. 학교생활기록부는 스펙 위주로, 수능은 EBS 교재로 준비하니 고등학교에서 교과서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서울 A고교는 5월부터 2학년 국어와 영어 수업을 EBS 수능 인터넷 강의 교재로 진행하고 있다. 이 학교 교장은 “중간고사 이후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것저것 다 하느라 시간이 부족하니 내신 부담이라도 줄여 달라’는 요구가 많아 교재를 바꿨다”면서 “학생들이 자기소개서에 쓸 체험 활동, 봉사, 교내 대회 등으로 바쁘다니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학부모들이 “수능은 어차피 EBS 강의로 준비해야 하니 내신 시험도 교과서가 아니라 EBS 강의로 준비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학교가 물러선 것이다.

서울 B고교는 중간고사 영어 과목에서 1∼3학년 모두 EBS 교재의 지문과 어휘를 대거 출제했다. 2학년은 중간고사를 치른 뒤 국어 영어 시간에 부교재로 쓰던 EBS 교재를 교과서 대신 쓰고 있다. B고교 2학년 학생은 “수업을 교과서로 하면 교과서, 중간·기말고사용 참고서, EBS를 모두 공부해야 하니까 아예 수업과 시험을 EBS로 통일하는 게 좋다”며 “교과서를 잃어버려도 다시 사는 애들도 없다”라고 전했다.

EBS로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2004년부터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수능에 EBS 강의를 연계하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연계율을 70%로 높였다. 교과서를 도외시하고 EBS 교재만 집중적으로 공부해도 절반이 넘는 수능 문제는 풀 수 있도록 한 것. 고3 교실에서 EBS 교재만 무턱대고 외우는 현상이 심해졌다.

EBS가 교재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아 통계는 없지만 참고서 유통 업계에 따르면 최근 EBS 교재의 교과서 대체 현상은 부쩍 심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권의 한 참고서 총판 관계자는 “교과서를 공부할 때 함께 보는 참고서 판매량이 꾸준히 줄고 있다”며 “이는 EBS 교재가 아예 교과서를 대체하고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까지는 주로 지방에 있는 고교, 그리고 3학년 교재에 한해 EBS 이외의 참고서가 많이 안 팔렸는데 올해는 서울의 고교와 1, 2학년 과목에서도 참고서 판매가 급격히 줄었다”고 덧붙였다.

교사들은 EBS 교재가 중심이 되면서 공교육과 교사의 권위가 덩달아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실력이 뛰어난 스타 강사와 자본을 투입해 체계적으로 만드는 EBS의 인강(온라인 강의) 콘텐츠와 일선 학교의 교사가 경쟁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서울 한 자율형 사립고 국어 교사는 “대체로 성실하다는 자사고 학생들조차 수업 시간에 자고 밤에 집에서 인강으로 EBS를 보는 게 효과적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면서 “교육부가 고교 교육을 살리겠다며 도입한 학생부종합전형이 진로 활동이나 수상 실적, 동아리 경험에 너무 많은 가중치를 두면서 오히려 본래의 교과 수업은 부실해지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bs 교재#학생부종합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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