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서울시 근로자이사제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공공기관 경영감시… 공익보호 먼저인데
근로자 직접 개입땐 노조이익 대변 우려
방만경영 손 못대고 개혁 장애물 될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시가 5월 10일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근로자이사제란 공공기관의 비상임이사의 일정 수를 소속 근로자에게 할당하는 제도를 말한다. 원래 공공기관의 비상임이사는 공공기관의 업무와 회계에 대한 감시를 통해 공공성을 실현할 목적으로 전문성을 가진 외부 인사 중에서 소정의 절차에 따라 임명된다.

그런데 서울시가 공기업의 공공성을 강화하기보다는 산하 공기업 경영에 이해당사자인 근로자이사를 참여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서울시는 근로자이사를 경영에 참여시킬 경우 이사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할 수 있고 노사의 대립과 갈등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근로자의 주인의식을 고양시켜 공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근로자이사제는 시장경제질서에 반하는 제도이고 시민이 주인인 공기업에서 근로자이사와 경영진의 의견 대립으로 이사회의 의사결정 지연 같은 부작용과 분쟁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오래전부터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한 독일 등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도 이 제도의 공과에 대해 경영계와 노동계는 물론이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서로 팽팽히 맞서 있다. 따라서 찬성하든 반대하든 외국의 근로자이사제에 대한 평가를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한 국가들은 대개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와 오랜 노사관계의 협치적 전통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노동법 전공자인 필자가 보기에는 역사적으로 근로자의 경영 참가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잘 운영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노동법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근로자이사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

첫째, 대부분의 공공기관에 과반수 노조가 있음을 고려하면 근로자이사제는 결국 노동조합이사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공공기관의 노동조합은 공공성보다는 조합원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반개혁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독일 스웨덴 등 어느 정도 근로자이사제가 정착된 나라들은 오랫동안 노사정 협치를 통해 노동시장과 노동법 제도의 개혁을 이뤄 왔다. 우리 노동조합은 어떠한가? 성과연봉제 같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노동개혁에 앞장서 반대하고 심지어 근로자이사를 통해 노동조합의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태도에서 근로자이사제가 노사의 담합을 더욱 공고히 할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둘째, 공공기관의 운영은 전문성과 중립성, 기업의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법률상 근로자의 경영 참여와 노사 협력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인 노사협의회조차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의 도구로 삼았으며, 경영 참가의 전제조건인 노사 간 신뢰 형성과 책임 공유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우선 노사협의회의 현실화를 통해 기업 내 의사결정에 대한 경험과 노사 간 상호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셋째,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잘못된 관행부터 고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공기업의 무책임 경영을 낳고 적자를 가중시키는 것처럼, 지방공기업의 방만경영 문제도 결국 지방자치단체장의 잘못된 인사에서 비롯된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의 비상임이사 제도를 개선해 경영 감시를 충분히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음에도 근로자이사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대선을 의식해 진영 논리에 기대는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그동안 추진해 왔던 노동개혁이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대규모 구조조정이라는 메가톤급 위기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비효율적 방만경영과 재정적자도 큰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는 근로자이사제가 공공기관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개선하고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개혁을 추진하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다시 이념적 갈등과 대립으로 분열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시#근로자이사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