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상시 청문회법 처리, 국회도 대통령도 당당하지 못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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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아프리카 순방 중 에티오피아에서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에 앞서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해 “입법부가 행정부 등에 대한 새 통제 수단을 신설하는 것으로 권력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대통령 재의 요구안(거부권)을 의결했다.

국회는 재의결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임시 국회는 3일 전 소집을 요구해야 하고 이번 19대 국회 임기는 29일 끝나기 때문에 회의 소집이 불가능하다. 19대 국회와는 인적 구성이 달라진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 헌법학자 다수의 견해다. 국회사무처는 “유사한 경우에 법안이 폐기된 선례가 있다”고 밝혀 법안 폐기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상시 청문회 제도가 국정을 신속·정확히 파악하고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다른 나라에는 없는 국정감사 외에도 국정조사와 중요 안건 청문회 제도가 있다. 법안을 위헌이라고 보긴 힘들지만 중복 과잉의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야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중대한 권한 침해”라고 비판했으나 의회도, 대통령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대통령이 국회를 견제하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한 만큼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상시 청문회법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북 치고 장구 친 ‘정의화법’이나 다름없다. 의장이 발의한 이 법안은 통과까지 공론(公論)을 모으는 과정이 없었고, 운영위나 법사위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지도 않았다. 여야 합의 없이 본회의 마지막 날에 상정한 것도 의장이다. 두 야당이 이런 법안의 재의결을 시도해 정쟁을 초래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상시 청문회가 꼭 필요하다면 20대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없애는 등 관련 법안을 정비해 새로 발의한 뒤 통과시키는 것이 정도(正道)다.

청와대는 이 법 통과 직후 “행정부 마비법”이라며 반발하면서도 거부권 행사를 주저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심각한 법이라면 박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를 주재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아프리카로 떠났어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돌아갈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해외 순방 시 처리한 것이나 국회 재의결이 더 이상 불가능한 날을 택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상시 청문회#거부권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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