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유값 인상 추진 논란]“미세먼지 잡을 극약처방” vs “물가 올라 서민들 치명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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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간 이견 뚜렷… 환경부, 전기료 인상 방안도 제안

환경부가 미세먼지 대책에 포함시키려는 경유 가격 인상안은 생계 수단으로 트럭 등을 이용하는 서민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세금 인상뿐 아니라 물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지는 민감한 사안이다. 따라서 산업계나 관련 부처의 반발은 물론이고 납세자인 국민들의 강한 ‘조세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 경유차 운행의 ‘가격 매력’ 확 줄이면?


경유 가격의 인상은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는 경유 차량의 구매 및 사용 욕구 자체를 줄이겠다는 차원에서 추진되는 정책이다. 경유 가격은 L당 평균 1137.79원(5월 첫째 주 기준)으로 휘발유(1375.56원)보다 17% 정도 싸다. 경유의 수입 원가 자체가 휘발유보다 싼 측면도 있지만, 여기에 따라붙는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각종 세금도 경유(L당 656원)가 휘발유(L당 896원)보다 싸기 때문에 가격 차가 더 벌어진다.

이 때문에 경유 차량의 가격이 휘발유 차량보다 상대적으로 비싼데도 ‘몇 년만 타면 본전을 뽑는다’는 인식이 운전자들 사이에 확산돼 있다. 여기에 경유차가 대부분인 유럽산 수입차의 인기까지 더해져 국내 경유차 비중은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지난달 41%를 넘어섰다.

환경부 관계자는 “원료 가격을 조정하지 않으면 경유차의 사용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며 “미세먼지의 절대적인 주범인 경유차를 즐겨 타고 다니면서 미세먼지 대책도 빨리 내놓으라고 말하는 이중적인 국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유차에 붙는 환경개선부담금의 경우 10만∼20만 원 정도여서 2000만 원 안팎인 차량의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 다른 당국자는 “공해차량 운행제한지역(LEZ) 확대, 차량 부제 실시 등 여러 다른 방안도 함께 추진할 것”이라며 “원료 가격의 인상은 마지막 핵심 단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경유 가격 인상이나 환경개선부담금 부과가 국민들의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LEZ 확대 등 노후 경유차 운전자들에 대한 규제 역시 결국은 과태료나 벌금을 물리게 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전기 사용을 줄여 화력발전소의 수요를 감소시키겠다는 취지에서 논의되는 전기요금 조정은 물가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변수다.


○ “못 받아들인다”며 난색인 재정 당국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환경부의 제안에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뜩이나 ‘서민 증세’에 대한 여론이 험악한데 에너지 관련 세금에까지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다.

기재부 당국자는 “환경부의 방안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수많은 논의와 검토 끝에 결정된 에너지 세제 비율(휘발유 대 경유=100 대 80)을 미세먼지 하나만의 변수로 갑자기 인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에너지 세금에 손을 대려면 자동차업계와 화물연대, 소비자, 정유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과 공청회를 통해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유 가격을 인상할 경우 화물차와 트럭 등 생계형 자영업자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지적도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경유 화물차와 버스 등의 비율은 전체 경유차의 절반을 넘어선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화물차와 버스의 경우 유류세가 인상되더라도 오른 만큼 유가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면서도 “결국 세금을 올려도 화물차와 버스의 수요에는 전혀 영향을 못 미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즉 경유 가격 인상이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는 화물차나 버스 운행을 줄이는 데에는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전기요금만 해도 한국전력이 지난해에만 11조3367억 원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린 데다 저유가 기조 속에 전력도 공급 과잉 상태여서 인상 명분이 약하다. 산업계에서는 오히려 한시적으로라도 전기요금을 낮춰 업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공짜 청정공기는 불가능한 욕심”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아주대 최기련 에너지학과 교수는 “추동력이 좋은 경유차의 성능이 마음에 들어서 몰고 다니는 사람은 원료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차를 포기하지 않는다”며 “경유 가격 인상으로 경유차 주행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는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김상협 KAIST 녹색성장대학원 초빙교수는 “가격 효과는 직접적인 정책인 만큼 경유 차량 운행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거세지는 만큼 이제는 이에 대한 비용 또한 부담해야 한다는 데에는 전문가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한국에서만 이례적으로 폴크스바겐 판매량이 늘어나는 등 환경 문제를 외면하는 소비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1.8배 수준인 전력사용량(국내총생산·GDP 대비)을 줄이기 위한 전기요금 조정 문제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이슈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 고위 당국자는 “연료소비효율이 좋고 원료 가격도 싼 경유차를 굴리고, 전기도 부담 없이 쓰면서 공기도 깨끗하게 하라는 건 불가능한 욕심”이라고 말했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임현석·이상훈 기자
#경유#디젤#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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