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忍辱第一道, 참는 게 가장 으뜸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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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하루 앞…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에게 듣다

퇴설당 밖으로 나선 원각 스님에게 “봄빛이 너무 좋다”고 말씀드리자 스님은 가만히 손을 들어 산을 가리켰다. 봄빛을 말로 떠들지 말고 눈으로 담아 마음으로 느껴 보라는 뜻으로 여겨졌다.
합천=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퇴설당 밖으로 나선 원각 스님에게 “봄빛이 너무 좋다”고 말씀드리자 스님은 가만히 손을 들어 산을 가리켰다. 봄빛을 말로 떠들지 말고 눈으로 담아 마음으로 느껴 보라는 뜻으로 여겨졌다. 합천=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경남 합천 해인사 퇴설당(堆雪堂)에서 바라본 가야산은 색색의 신록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색채의 새잎을 틔운 나무들은 사람의 마음을 봄처럼 화사하게 만들었다.

소박한 현판이 걸린 퇴설당은 경허 성철 혜암 법전 스님 등 역대 선사와 종정이 머물러 한국 불교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다. 지난해 3월 이곳의 새 주인이 된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을 부처님오신날(14일)을 앞둔 9일 만났다. 국내 일간지로서는 첫 인터뷰. 말씀 내용은 엄했지만 인터뷰 동안 소박하고 자상한 미소가 스님의 입가에 감돌았다.

―우선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묻고 싶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홀로 귀한 건 싯다르타 태자 개인이 아니라 인간 모두가 갖고 있는 본래의 나, 즉 본성(本性)이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이 본성이 미혹되니까 세상에 고통이 가득 차는데, 본성을 찾는 길을 밝혀 주겠다는 부처님의 염원이 담겨 있어요. 부처님은 올바른 길을 만들어내는 신통한 능력이 있는 도사(道士)가 아니라 그 길로 사람들을 이끄는 도사(導師)입니다.”

―스님은 1967년 출가한 뒤 한평생 간화선 수행을 해왔는데 스님이 보는 간화선 혹은 선 수행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태양이 구름에 가리면 밝지 못한 것처럼 내가 곧 부처인데 어리석음, 욕심, 성냄에 갇혀 제 모습대로 쓸 수 없는 겁니다. 문제를 자꾸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면 싸우고 고통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래 마음이라는 근본을 깨달으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화두든 어느 장소든 화두를 깨닫지 못했다면 화두를 참구해야 합니다. 그게 곧 간화선 수행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럽고 서로 헐뜯고 싸우기 바쁩니다. 세상에 꼭 들려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으시다면….

“꼭 한마디만 해야 한다면 화광동진(和光同塵)입니다. 나를 낮추고 같이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인욕제일도(忍辱第一道)’가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참고 견디는 게 가장 으뜸인 도라는 겁니다. 이게 성별 직업 경제형편 이념 종교 등을 떠나 나와 네가 서로 잘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여기에 나와 남의 구별을 버리고(선수제아인·先須除我人), 거울에 자취가 남지 않듯 나쁜 일이 닥쳐도 그걸 (마음에) 품지 않으면(사래무소수·事來無所受) 됩니다. 내가 잘돼야 남도 잘되고 남이 잘돼야 나도 잘된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생각이 우리를 화합하게 만듭니다.”

―은사 혜암 스님(1920∼2001)과의 인연을 말씀해 주세요.

“1967년 행자 시절 혜암 스님과 한 방에서 5, 6개월 같이 머물며 수발을 들었습니다. 아직도 ‘네가 중노릇 잘못하면 나도 지옥에 간다’라는 말씀이 생생해요. 주위 사람과의 인연이 소중함을 강조하신 거죠. 또 늘 사소한 것이라도 이치에 맞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그래야 큰일도 이치에 맞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본인은 주무실 때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을 하셨고 대중과 떨어져 계셔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질 못했습니다.”

―최근 민심이 총선을 통해 반영됐는데 새로 선출된 20대 국회의원들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입니까.

“어떤 일을 진보는 진보, 보수는 보수 입장에서만 보려고 하니까 일이 제대로 안됩니다. 이 일이 잘되기 위해선 어느 것이 필요한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의 시각도 과감히 수용할 수 있는 자세로 생산적인 국회를 만들기 바랍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해인사#원각 스님#부처님 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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