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수시로 말 바꿔도… 트럼프 인기 미스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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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뉴욕특파원
부형권·뉴욕특파원
“이 창은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습니다. 이 방패는 어떤 창도 다 막아 낼 수 있죠.”(상인)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나요.”(행인)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맞지 않음을 뜻하는 모순(矛盾)의 우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70)는 ‘걸어 다니는 모순덩어리’라고 마이클 린치 코네티컷대 철학과 교수가 8일 뉴욕타임스에 썼다. 트럼프는 수시로 말을 바꾸고 심지어 같은 인터뷰나 연설에서도 모순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동안 “시간당 7.25달러는 너무 높다”고 말해 오다가 8일 NBC 인터뷰에서는 “어떻게 그 돈으로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최저 시급이 어느 정도 올랐으면 좋겠다”고 말을 바꿨다. 종전의 ‘부자 감세’ 공약과는 정반대로 ‘부자 증세’도 주장했다.

낙태 문제에 대해 ‘여성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가 최근엔 “낙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라며 반대로 돌아섰다. 비난 여론이 일자 “여성은 희생자다. 시술 의사는 처벌돼야 한다”고 번복했다. 시리아 난민에 대해서도 지난해 9월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가 몇 개월 만에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며 다른 말을 했다.

정치에서 말 바꾸기는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모순은 오히려 그 인기와 지지의 중요한 발판이라고 린치 교수는 분석했다. 트럼프는 비판받을수록 사과는커녕 더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모순된 발언과 행동을 반복한다.

“트럼프가 자유롭게 말을 바꾸는 건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준다. 그건 일종의 권력을 상징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진짜 강한 자만이 저렇게 할 수 있다’고 느낀다.”(린치 교수)

특히 정제되지 않은 정보, 정반대 논리가 범람하는 디지털 세상에 살면서 우리 모두가 객관적 진실보다는 ‘나와 같은 생각’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됐고 그 토양 위에서 트럼프의 ‘모순 정치’가 큰 파괴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고사 속 행인과 달리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기 입맛에 따라 트럼프의 창과 방패를 구입하는 셈이다. 그런데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는 진실의 순간이 과연 오기는 할까.

부형권·뉴욕특파원 bookum90@donga.com
#트럼프#미국대선#모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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