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미국 언론은 왜 닉슨을 미워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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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역사/폴 존슨 지음·명병훈 옮김/852, 812쪽(1, 2권)/각 3만8000원·살림

‘케네디는 공작정치의 달인이고 닉슨은 시대의 희생자였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아마 고개를 갸웃거릴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얘기한 것 아닌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이자 역사 저술의 대가로 손꼽히는 폴 존슨은 색다른 시각으로 케네디와 닉슨 시대를 재평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닉슨이 일삼았다고 여겨지는 도청 등 정치공작은 이미 전임자인 케네디를 비롯해 루스벨트, 존슨 대통령 시대에 폭넓게 활용된 수법이었다. 케네디의 동생이자 법무장관이던 로버트 케네디는 FBI를 시켜 정부 정책에 반대한 US스틸 경영진의 자택을 급습하도록 했다. 국세청을 동원한 협박도 병행했고 특히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에서 전화 도청 횟수는 기록적으로 증가했다.

그렇다면 왜 닉슨만 호되게 당한 걸까. 저자는 권력화된 당시 미국 언론이 닉슨에게 유독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루스벨트나 케네디의 숱한 여성 편력과 외도, 비리를 알고도 집권 내내 침묵한 미국 언론들이 닉슨 타도에는 총력을 기울였다는 거다.

그 이유는 다분히 음험하고 정략적이다. 저자는 “워싱턴포스트는 닉슨이 자사 계열 방송국의 인가 신청을 고의로 반대한다고 믿었다”고 썼다. 워싱턴포스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1면에 79회나 게재할 정도로 닉슨 죽이기에 앞장섰다.

저자는 닉슨이 도리어 국제정치에서 미국의 국가 이익을 지키는 등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고 강조한다.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의 이스라엘 침공 때 빠르고 정확한 판단으로 수세에 몰린 이스라엘을 구해낸 것은 닉슨의 공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만약 닉슨이 더 빨리 사임했다면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미국인의 역사#폴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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