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서인구 5%… 그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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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윤옥 옮김/336쪽·1만4000원·현대문학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소설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책에서 “소설가로서 작업을 계속하게 해줄 지속력을 기르기 위해선 기초체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작가가 30년 넘게 매일 한 시간씩 달리기를 해온 이유다. 동아일보DB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소설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책에서 “소설가로서 작업을 계속하게 해줄 지속력을 기르기 위해선 기초체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작가가 30년 넘게 매일 한 시간씩 달리기를 해온 이유다. 동아일보DB
봄 어느 날 그다지 인기 없는 프로야구팀의 개막전. 남자는 외야석에 드러누워 맥주를 마시면서 경기를 보다가 방망이에 공이 맞는 상쾌한 소리를 들었다. 띄엄띄엄 박수 소리가 들릴 때 서른을 앞둔 남자는 문득 생각했다.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67)가 야구를 보다가 소설을 쓰기로 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졌지만, 바로 그 순간을 작가 자신의 고백으로 들으면 이렇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어째서 그것이 때마침 내 손안에 떨어졌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뭔가는 물론 방망이에 맞은 공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감각일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일본의 대표 작가인 그가 털어놓는 작가로서의 삶이다. 그의 에세이는 그간 독특한 감성이 빛나는 글 모음이었는데, 이번 책에선 작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내적 고백뿐 아니라 문단 이슈 같은 외적 문제도 짚는다.

가령 문학상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작가는 30여 년 전,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꼽히는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2번 오른 적이 있다.

그는 문예지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는 정말로 순수하게 기뻤지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을 때는 “(가능하면 믿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상을 타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한때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아쿠타가와상을 타지 못했는가’라는 책도 나온 적이 있다. 작가는 이에 대해 문학상이라는 ‘스펙’보다는 “나라는 개인 자격으로 글을 쓰고 인생을 살아온 데 대해 나름대로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감각적인 문체는 다른 작가와는 크게 구별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대한 뒷얘기도 흥미롭다.

등단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쓸 때다. 처음 써본 ‘소설 비슷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했다. 그는 ‘문학적인’ 자세를 갖게 하는 만년필과 원고지를 치워놓고 영문타자기를 꺼낸다. 그리고 소설 첫 부분을 영어로 써본다. ‘평범하지 않은 것’을 해보자, 하고. 외국어여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는 한정적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기계적으로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의외로 표현은 괜찮다. 그는 이렇게 쓴 영어 문장을 ‘번역’했다. 그러자 모국어임에도 새로운 스타일의 문체가 나타났다.

그는 “언어가 가진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것은 모든 작가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리이며 그런 모험심 없이는 새로운 것은 탄생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작업에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역시 소설에 대한 작가의 투철한 인식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문학물을 읽는 사람은 일본 전체 인구의 5%쯤 될 거라고 말한다. 그는 아마 그 5%는 강제로 막는 일이 있어도 책을 읽을 거라면서 “그런 사람들이 스무 명에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한, 책이나 소설의 미래에 대해 내가 심각하게 염려할 일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염려하는 것은 그저 “나 자신이 그 사람들을 향해 어떤 작품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뿐”이라면서.

리듬감이 풍부한 문장은 그대로지만 내용은 꽤나 직설적이다. 작가 특유의 감수성을 기대한 독자라면 당혹할지도 모르겠다. 예의 바르지만 솔직하고, 때로는 거칠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덕분에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좀 더 친밀하게 다가온다. 세련된 취향을 가진 고고한 작가가 아닌, 마음고생 만만찮은 직업인 소설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어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소설가들에게, 또 소설가 지망생에게,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뿐 아니라 자신의 업(業)에 고단해하는 많은 직업인을 향한 것일 수도 있겠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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