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대기자의 人]공약부터 입주까지 10년 뚝심… 경북 ‘4륜구동’ 시대 열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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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만의 경북도청 이전 이끈 김관용 지사

김관용 경북지사는 민선 6기 도정 캐치프레이즈를 ‘사람중심! 경북세상!’으로 정했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경북이 역사발전의 주역이 되자는 뜻. 김 지사가 매일 그런 의지를 다지는 새 청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안동=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김관용 경북지사는 민선 6기 도정 캐치프레이즈를 ‘사람중심! 경북세상!’으로 정했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경북이 역사발전의 주역이 되자는 뜻. 김 지사가 매일 그런 의지를 다지는 새 청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안동=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말 한마디가 준 첫인상이 꽤 오래가는 경우가 있다. 김관용 경북지사(73)가 그렇다. 몇 년 전 잠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경상북도에도 다문화가정이 많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군대 갈 나이가 됐다. 그들에게 총을 쥐여 주고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라고 할 때가 온 것이다. 아이들과 국민이 서로 신뢰하려면 국가가 다문화가정에 정말로 잘해 줘야 한다.” 설득력이 있었다. 기자는 ‘표에 민감한 선출직치고는 감성적이면서도 학구적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다시 만날 일이 생겼다. 경상북도라는 이름이 생긴 지 120년 만에 도청을 대구에서 안동으로 옮겼다고 해서다.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한 개청식은 3월 10일. 그로부터 한 달쯤이 흐른 12일, 새 청사에서 김 지사를 만났다.

도청을 옮긴 이유부터 물어봤다.

“경북도청은 120년간 대구 포정동과 산격동에 있었다. 그러다 1981년 대구직할시가 생기면서 도청이 경상북도 밖에 있는 문제가 발생했다. 도청 이전은 경북의 중심이 더 이상 대구가 아니라는 지리적 자부심과 도민의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키는, 말하자면 경북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체성’ 때문만은 아닐 듯하다. 김 지사는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경북 북부지역의 발전도 언급했다. 기존의 대구, 구미, 포항 중심의 남부 개발축에 북부의 신도청축이 늘어 삼륜구동차가 사륜구동차가 됐다는 것이다.

김 지사는 ‘한반도 허리경제권’이라는 것도 제창했다. 이 개념은 정부 청사는 서울에서 세종시로 내려오고, 경북도청은 대구에서 안동으로 올라가 북위 36도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세종 충남 충북 전북 강원 경북을 잇는 한반도 허리권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동서5축 고속도로와 동서횡단 고속철도 건설, 허리경제권 5대 산업광역벨트 조성 등을 언급했다. “하늘이 준 기회”라고까지 하니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다.

신청사가 들어선 안동과 예천에 걸쳐 인구 10만 명의 명품 자족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플랜도 소개했다. 2027년까지 3조 원을 들여 번듯한 행정·교육·산업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저출산과 대도시 쏠림 현상을 넘어서야 하니 성공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도청 이전을 공약하고 실천하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반대도 적지 않아 표에 약한 선출직으로서는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게 있다. 2006년에 도청 이전을 공약한 것도, 2008년 이전지를 안동 예천으로 결정하고 준비를 해온 것도, 실제로 옮긴 것도 김 지사라는 사실. 지사를 내리 세 번째 하고 있기에 가능한 ‘행복한 짐’이었을 것이다. 그는 구미시장도 세 번을 지냈다. 선출직 자치단체장 6선은 그가 유일하다.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감각’ 같은 게 있다. “실크로드의 동쪽끝(동단·東端)은 중국이 아니라 경주”라는 주장도 그렇다. 김 지사는 주장만 한 게 아니라 경주를 출발점으로 삼아 2013년 육상 실크로드, 2014년 해양 실크로드, 2015년 철의 실크로드 대장정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그는 실크로드 마케팅에 대해 “국가가 할 일을 경상북도가 하고 있다”고 말한다. 불평 같지만, 실은 자랑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경상북도는 “경주가 실크로드의 동단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말한다. 검증을 해야겠지만, 화제를 만들고, 키우고, 굳히는 데는 반드시 리더의 열정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자명하다.

김 지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다. 새마을운동 국제 전도사라는 것. 새마을운동에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그렇지만 김 지사는 새마을운동을 국내에 가둬두고 티격태격할 생각이 없다. 자립을 통해 빈곤퇴치를 지향하는 새마을운동은 이미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지속가능한 모델로서 국제적 브랜드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새마을운동은 위대하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눈 밝은 이는 금방 알겠지만 그의 집무실에는 태극기와 경상북도기 외에 큰 깃발이 하나 더 있다. 새마을운동기다.

그는 “독도 문제도 중앙정부가 대들지 말고 지방정부에 맡기고, 잘못하면 야단만 치면 된다”고 했다. 민감한 영토문제는 국가보다 부담과 저항이 적은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게 득이라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이니 탁견이다. 평소 대표적인 지방분권론자이자 균형발전론자로 불리는 이유를 알 듯하다. “그는 지방자치를 20년 넘게 했지만 중앙 정부는 중앙통제의 단맛만 알고, 권한분산에는 인색하다”고 비판한다. 개헌을 한다면 지방자치권을 대폭 강화하는 규정을 넣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다문화가정 문제도 다시 물어봤다. “제도적으로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하며,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주류사회에 편입하려면 공부밖에 방법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는 최근 5년간 65억 원의 다문화장학금을 만들어 지난해 처음으로 ‘어머니의 나라’ 베트남에 어학연수를 보내는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는 중국으로 보낸다.

김 지사와의 인터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해도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 않다. 그와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눈 게 문화, 그중에서도 경상북도가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경상북도는 고대 가야문화, 천년의 신라문화, 오백년의 조선 유교문화가 꽃을 피운 곳이라고. 종갓집만 241곳이란다(전국의 35%).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때는 경상북도가 호국의 마지막 보루였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경북의 ‘혼’ ‘정체성’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그 연장선에서 김 지사는 삼국유사 목판사업과 신라사대계 편찬사업에 애착이 강하다. 새 도청 1층 로비의 메인 전시도 두 사업에 대한 설명이다. 삼국유사 목판사업은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썼던 군위군에 지난해 도감소를 만들고 각수(刻手)를 뽑아 한창 복각작업을 하고 있다. 내년에 끝날 예정. 신라사대계 편찬은 전공학자 136명과 편집위원 27명을 망라해 30권(총서 22권, 자료집 8권)의 방대한 책을 내는 사업으로 곧 책이 나온다. 두 사업 모두 도지사의 의지가 없었다면 책상 위에도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김 지사는 구미에서 태어나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구미국민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밤에는 영남대에서 경제학과 행정학을 공부하며 1971년 행정고시(10회)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꿈은 화가였으나 홀어머니 밑에서의 가난은 그런 사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김 지사는 스스로를 ‘잡초’에 비유할 때가 많다. 별명은 ‘DRD’라고 하는데 ‘드리대’의 영어 약자라고 한다. 도민을 위해서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마구 들이댄다는 뜻이다. 그 덕분에 그는 리얼미터가 매달 조사하는 시도지사 평가에서 유일하게 70%대 지지를 얻으며 7개월째 1등이다.

그의 향토문화 사랑과 자부심은 어디에서 왔을까. 초등학교 교직경험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본다. 기자는 그가 ‘잡초’보다는 ‘활동적인 학자’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퇴계 이황의 왼쪽에 누구의 위패를 놓을지를 두고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문중이 400년 동안 다퉈온 소위 ‘병호시비’를 해결한 것도 김 지사의 진정성이었다. 그가 1995년 처음으로 구미시장에 출마했을 때는 30년 전의 초등학교 제자들이 자기 일처럼 선거를 도왔다고 한다. ‘비가 오면 주민들에게 우산을 씌워 주지 말고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주장이나, ‘접인춘풍 임기추상(接人春風 臨己秋霜·사람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추상처럼 하라)’이라는 가훈 등에서 선생님의 편린을 발견한다.

인터뷰 다음 날의 총선결과에 대해서는 서면으로 의견을 물었다. “역사는 비용과 희생 위에서 발전한다. 이번 선거가 한국의 정치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답을 보내왔다.

교사 시절, 군수는 한번 해 보고 싶었다는 김 지사. 2년이 지나면 그는 훨씬 큰 꿈을 이루고 23년간의 자치단체장 생활을 마감한다. 그 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현장에 계속 있고 싶다”고는 했으나 ‘현장’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만한 경험자가 갈 만한 현장이 마땅치 않아 대답이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끝내고 사사로운 대화를 나누다가 그에게 불쑥 이런 말을 했다. “20년 넘게 대접 받는 생활만 했으니 퇴직 후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할 것 같다”고. 그러자 그는 품고 다니는 작은 쪽지를 하나 보여줬다. 펜으로 쓴 중국 송나라의 명재상 범중엄(989∼1052)의 시였다.

‘한 줄기 푸른 산의 경치가 그윽한데/앞사람 갈던 땅을 뒷사람이 갈아먹네/뒷사람아, 그렇다고 기뻐하진 마시게나/그대 다음 밭 갈 사람, 기다리고 있으니.’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와는 청년 실업과 일자리 창출, 지역 갈등 해소 방안 등에 대해서도 깊은 얘기를 나눴으나 지면 관계상 모두 담지는 못했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만나 범중엄이 쓴 시의 속편을 들어보고 싶다.

‘뒷사람이 하는 일, 먼발치서 지켜볼 뿐/옛 영화를 잊으면 누항도 즐겁다네/천명을 기다리는 노인에게 들을 게 무에 있나/어제 내린 막걸리나 한 사발 하고 가시게나.’

혹시, 이런 시는 아닐지….

 
▼한옥에 첨단기술 접목… 방문객 33만 명 넘어서▼
 
관광 필수코스 된 경북도청사

 
경상북도는 도청을 이전하고 나서야 ‘어떤 착오’를 확인했다. 누구도 예상을 못했는데 새 청사가 관광명소가 된 것이다.

새 도청은 안동시 풍천면 25만 m²의 터에 본청과 도의회, 주민복지관, 다목적공연장 등 4개 동으로 되어 있다.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2011년 10월에 착공해 2015년 4월에 완공했다. 사업비는 3875억 원.

그러나 숫자는 새 청사의 매력이 아니다. 최첨단이긴 하지만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에 친근미를 얹은 한옥 기와지붕의 멋과 곡선, 그리고 그곳에 담긴 경북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매력이다.

1층 로비 왼쪽 벽면에는 ‘德業日新 網羅四方(덕업일신 망라사방·덕을 쌓는 일이 나날이 새로워 사방을 두루 아우른다)’이라는 글씨가 걸려있다. 출전은 삼국유사. 여기서 ‘신라(新羅)’라는 국호가 나왔다. 경주 출신 심천 한영구 선생 작품. 오른쪽 벽면에는 ‘경북은 한국정신의 窓(창)’이라는 글씨를 걸었다. 예천 출신 초정 권창륜 선생이 썼다.

또 하나 명물은 높이 17.5m, 굵기 1.4m, 무게 2.5t짜리 대형 붓. 건물 중앙을 관통하는 빈 공간의 꼭대기에서 매달아 1층 로비까지 내려온다. 직경 6mm짜리 동파이프 3만 개(32km)로 만들었다. 한양대 정순각 교수 작품.

청사 방문객은 인근에 있는 하회마을에 왔다가 들르는 경우가 많다. 올해부터 방문객이 크게 늘어 3월에만 7만8000여 명, 29일로 누계 33만 명을 넘어섰다. 도는 청사운영기획팀(7명)을 새로 만들고 연중무휴로 안내요원(3명)과 문화해설사(7명)를 배치했다.

경북 안동의 새 도청은 요즘 한옥 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러 오는 관광객으로 북적이고(사진 위) 김관용 지사도 이들과 인사하느라 덩달아 바빠졌다.
경북 안동의 새 도청은 요즘 한옥 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러 오는 관광객으로 북적이고(사진 위) 김관용 지사도 이들과 인사하느라 덩달아 바빠졌다.
김관용 지사는 요즘 방문객들에게 ‘붙들려’ 함께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다. 12일 인터뷰 사진을 찍으러 청사 밖으로 나왔을 때도 아는 사람이 인솔하는 단체방문객과 딱 마주쳤다. 결국 마이크까지 잡고 청사해설사로 나섰다. 그래도 즐겁다. 방문객 중 한 명이 큰소리로 “우리 지사님은 나라의 보배여”라고 했으니. 23개 시군과 주민 275만 명의 도백, 할 만하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경북도청#김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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