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도 못되는 丙… 쪽잠 자며 24시간 간병해도 4대보험 ‘감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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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근로자의 날… 근무 열악… 그들의 서러운 이야기

《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노동절)’이다.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과 근로자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된 날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턱없이 낮은 임금과 불합리한 처우를 받으며 일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근로자의 날을 앞두고 을(乙)보다도 못한 병(丙)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요양병원 병실에서 간병인이 간이침대에 걸터앉아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24시간 병실에 붙어 있으면서
 갑작스러운 환자들의 요청에 응해야 하는 간병인에겐 식탁에서 여유 있게 식사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요양병원 병실에서 간병인이 간이침대에 걸터앉아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24시간 병실에 붙어 있으면서 갑작스러운 환자들의 요청에 응해야 하는 간병인에겐 식탁에서 여유 있게 식사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28일 오후 1시 점심시간이 막 끝난 서울 관악구의 한 요양병원. 간병인 남순례(가명·60·여) 씨의 눈은 실핏줄이 터진 듯 붉게 충혈돼 있었다. 그는 갑자기 고열이 나타난 환자를 돌보느라 밤새 2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점심식사를 거르고 잠시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도저히 형편이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낮에 누워 있으면 환자랑 보호자들이 보기에 좋지 않으니까 누워 있지 말라’고 하더라고….”

남 씨가 돌보는 환자는 모두 4명. 이들의 밥을 모두 챙기고 난 뒤에야 그는 간이침대에 쪼그려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식사 시간은 단 10분. 환자 한 명씩 화장실에 데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신장 150cm가 조금 넘는 작은 체구의 남 씨가 혼자서 남자 환자를 부축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는 “2년 전인가, 중풍 걸린 남자를 안으려다가 허리 인대가 파열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 “근로자 아니라 4대 보험 혜택도 못 받아”

남 씨 같은 간병인들은 ‘협회’라고 불리는 곳을 통해 일자리를 얻는다. 한 달에 6만 원 정도의 비용을 내면 협회는 요양병원에 간병인을 연결해 준다. 근로계약서는 따로 없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사업자다. 국가자격증을 따서 요양병원 등에 정식 취업하는 요양보호사와는 다른 처지다.

게다가 간병인협회와 요양병원 모두 간병인과 직접 계약하는 주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협회는 간병인을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회원’으로 보고, 병원은 이들을 용역업체 직원으로 본다. 24시간 꼬박 병실에 붙어있을 경우 간병인은 7만 원가량의 일당을 손에 쥔다. 경기 부천시의 한 요양협회 팀장 A 씨는 “‘7만 원도 부담이 크다’는 환자들의 불만 때문에 6만 원에서 7만 원으로 올리는 데도 한참 걸렸다”고 털어놨다.

간병인 대부분은 50, 60대 여성. 연령대가 높다 보니 남 씨처럼 일하다 다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근로자가 아니다 보니 4대 보험 적용도 받지 못한다. 간병인 이양순(가명·71·여) 씨는 지난달 휠체어에 걸려 넘어져 대퇴골경부 골절상을 입었다. 수술비와 입원비로 1000만 원 가까운 병원비가 들었지만 산업재해 처리가 안 돼 전액을 자비로 내야 했다.

이처럼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지만 정부는 간병인의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법적 지위가 명확하지 않으니 전국에 몇 명의 간병인이 있고 얼마를 받는지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여기저기 눈치만… 내년이 더 불안”

경기 지역의 한 중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치는 최유정(가명·43·여) 씨. 그는 교사가 아니라 이 학교 예술강사다. 지난해 11월 무용을 배우던 학생들이 갑자기 “선생님, 피자 쏘시면 저희도 선생님 점수 잘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최 씨의 가슴이 철렁했다. 좋은 평가를 받아야 내년에도 최 씨가 수업을 배정받을 수 있다는 걸 학생들이 알고서 ‘노골적으로’ 농담을 던진 것이다. 최 씨는 “비록 정식 교직원은 아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늘 선생님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했다”며 “아이들한테 이런 식의 말을 들어야 하는 내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최 씨처럼 일선 학교를 돌며 무용과 연극 만화 등의 수업을 하는 예술강사는 전국적으로 약 5000명이 있다. 이들은 초중고교 8000여 곳을 돌며 수업을 진행한다. 예술강사가 되려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회가 지정한 각 시도 지원센터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계약 기간은 일반적으로 10개월. 재계약을 하려면 △해당 학교의 정교사 △수강 학생 △각 시도 지원센터 등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예술강사들은 “당장 내년 밥줄이 걸려 있다 보니 세 곳 모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며 “을보다 못한 병의 신세”라고 말한다.

정모 씨(46·여)는 지난해 출강했던 경기 지역 한 중학교와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학생회장 선거 준비로 사용이 어려운 강당 대신 운동장에서 무용 수업을 한 게 화근이었다. 정 씨는 “지원센터에 충분히 상황을 해명했지만 이미 학교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려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털어놨다.

경호업체 보안요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서울 용산구의 한 빌딩에서 2년째 보안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심모 씨(26)는 넉 달째 하루 10시간을 근무하고 있다. 그는 “처음엔 하루 8시간 근무에 8만 원을 받기로 했는데, 빌딩에서 일방적으로 근무시간 연장을 통보했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가장 기본적인 근로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직군이 생각보다 훨씬 많을 뿐 아니라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에 따른 문제도 계속 불거지는 추세”라며 “음지에 놓인 이들의 구인구직 시스템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등 근로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창규 kyu@donga.com·김재희·강성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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