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얻었지만 학교 갈 틈 없어… “교육기회 넓혀야 빈곤 탈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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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코리아 프로젝트 4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민주주의 실험 현장을 가다]<下> 요르단 난민촌의 시리아 아이들

돈벌이 나선 난민 어린이들 요르단 북부에 위치한 시리아 난민 주거지역인 ‘자타리 캠프’에서 압둘 사타르
 군(14)이 이를 악물고 식료품이 가득한 외발 수레를 밀고 있다.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 아동·청소년 중엔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이들이 3만6500여 명에 달한다. 마프라끄·암만=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돈벌이 나선 난민 어린이들 요르단 북부에 위치한 시리아 난민 주거지역인 ‘자타리 캠프’에서 압둘 사타르 군(14)이 이를 악물고 식료품이 가득한 외발 수레를 밀고 있다.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 아동·청소년 중엔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이들이 3만6500여 명에 달한다. 마프라끄·암만=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지독한 내전은 벌써 5년을 넘겼다. ‘아랍의 봄’ 기운을 타고 2011년 3월 반군이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시작된 내전은 상처만 남겼다. 5년 동안 25만여 명이 사망했다. 독재자는 자국민을 상대로 전투기를 동원한 것은 물론이고 화학무기까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국가(IS)가 발호하고 국제사회가 개입하면서 아사드는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리아인 상당수가 참혹한 삶과 절망 대신 새로운 미래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난민의 길을 택했다. 터키, 레바논에 이어 가장 많은 난민이 간 곳이 요르단이다. 1999년 압둘라 2세 국왕 집권 이후 정치 사회 등 각 분야 개혁에 속도가 붙은 요르단은 시리아 난민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1년 1월부터 정치개혁 등을 요구하는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가 이어진 이후 요르단은 헌법재판소와 독립된 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했다.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파격적인 개혁을 감행한 뒤 치러진 2013년 1월 총선 이후엔 의회와 협력해 내각을 구성하기도 했다. 더딘 속도지만 아랍국가 중엔 눈에 띄는 속도로 민주주의가 정착하고 있는 것이다.

○ “학교보다는 일터가 먼저”


내전을 피해 탈출한 시리아 난민 7만9500여 명이 모여 사는 요르단 북부 마프라끄 주 자타리 캠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키 130cm가량의 압둘 사타르 군(14)이 이를 악물었다. 사타르 군은 쌀, 토마토 등 각종 식료품으로 가득 찬 외발 수레를 온몸으로 밀기 시작했다. 무게가 20kg은 넘어 보였다. 뙤약볕 탓에 체감온도 30도가 넘는 무더위를 뚫고 1km 떨어진 캠프 내 가정집까지 배달하면 1요르단디나르(약 1600원)를 받는다. 사타르 군은 “하루 종일 캠프 내 가게 앞에서 ‘수레 필요하신 분!’ 하고 외친다”며 “운이 좋으면 하루에 5번 넘게 배달할 수 있다”고 했다. 사타르 군은 3년 전 요르단에 온 뒤 줄곧 ‘수레 배달’을 하고 있다. 아버지(75)는 흉부 수술 이후 거동을 못한다. “학교에 가고 싶지만 저한텐 돈을 버는 게 더 중요해요.”

시리아 난민들은 전쟁의 참상을 피해 민주주의를 찾아 나섰지만 새로운 난관에 부닥쳤다. 최소한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직면한 교육 문제가 그것이다.

최근 방문한 캠프 내 마카니센터에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 시리아 난민 아동·청소년들이 모여 있었다. 농장에서 일하거나 ‘수레 배달’을 하는 아이들이 이날 잠시 짬을 내 센터에 들러 아랍어 알파벳이 적힌 종이로 단어를 만드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 정부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을 통해 120만 달러를 투자한 마카니센터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동·청소년에게 소통 기술, 음악·체육, 수학 등 경제 활동에 필요한 교육을 한다. 이곳에서 만난 칼리드 자심 군(14)은 아버지와 함께 토마토 농장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시리아에서는 학교에 다녔다는 자심 군은 “동생 6명을 공부시켜야 하는 데다 일이 끝나는 시간이 일정치 않아 학교에 갈 수가 없다”며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 ‘교육 골든타임’을 잡아라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요르단 국경을 넘는 난민이 급증하면서 부모를 따라온 아동·청소년의 수도 크게 늘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요르단에 등록된 시리아 난민은 63만5324명. 이 중 학교에 다니는 아동·청소년은 14만 명. 3만6500여 명은 생계 등을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자타리 캠프 내 수우니야 학교의 살렘 엘레이얀 교장은 “난민 아동 중엔 한 명이 가족 10명 가까이를 먹여 살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 학교에 오라고 권유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요르단 정부는 국경을 넘은 이후 최대 3년을 ‘교육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3년 안에 시리아 난민이 요르단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영원히 교육에서 배제된다는 것. 이수철 주요르단대사관 참사관은 “교육에서 낙오된 뒤 IS 같은 극단주의 단체의 포섭 대상이 될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어떻게든 교육 시스템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교사가 부족한 ‘콩나물 학교’

난민 급증으로 교육 환경도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요르단 학교 98곳은 2부제 수업을 하고 있다. 오전엔 요르단, 오후엔 시리아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식이다. 시리아 학생 유입으로 과목당 수업 시간은 45분에서 35분으로 줄었다. 교사 부족으로 예·체능 교육을 포기하는 학교도 늘어났다. 한정된 기자재를 나눠 쓰다 보니 교체 주기도 빨라졌다. 요르단-시리아 난민 학생 간 충돌도 빈번하다. 요르단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은 “시리아 난민 아이들 탓에 교육 기회가 줄어들고 교육의 질은 낮아지고 있다. 우리가 역차별당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요르단 교육부는 학교 부족 현상을 방치할 경우 본격적으로 갈등이 터져 나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요르단 교육부는 학교 과밀화를 해소하고 요르단-시리아 아이들이 통합교육을 받게 하려면 학교 100곳, 교사 7000여 명이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무함마드 스네이바트 요르단 교육부 장관은 “시리아와 요르단의 교육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통합 교육하려면 교사 재교육도 시급하다”고 했다.

○ “北 급변사태 시 겪게 될 문제”

요르단 교육부는 최근 코이카에 시리아 난민이 밀집한 이르비드, 자르카, 마프라끄 지역에 학교 4곳을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시리아 난민 학생과 요르단 취약 계층 학생들이 함께 다닐 학교를 건립해 달라는 것. 코이카는 이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예비조사 보고서를 준비 중이다. 1100만 달러가 소요될 이 사업이 추진되면 학생 24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코이카는 공업지대인 자르카 지역에서 요르단 및 시리아 난민 학생들이 전문적으로 산업 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술고등학교 설립도 추진 중이다. 스네이바트 장관은 “학교가 만들어지면 교육의 질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본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요르단 교육계가 겪고 있는 혼란은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하거나 급작스럽게 통일이 이뤄져 북한 난민들이 대거 몰려올 때 우리 정부가 직면할 문제이기도 하다. 변숙진 코이카 요르단사무소 소장은 “교사·학교 부족 문제 등에 대한 해결책을 미리 만들어 놓지 않으면 우리도 요르단 같은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프라끄·암만=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요르단#난민촌#시리아#아이들#민주주의#통일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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