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아래’ 감독 “北실상 촬영본 지키려 화장실서 시간 끌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5일 15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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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는 북한의 8세 소녀 진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진미는 곧 북한 최대 명절 중 하나인 김일성의 생일, 태양절 축하 무대에 설 예정이다. 영화 초반 카메라는 깨끗하고 잘 정리된 평양 거리, 화목하고 다정한 진미네 집안 풍경, 그리고 똑 소리 나게 학교생활을 하는 진미를 비춘다. 하지만 카메라가 연출된 장면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이면의 진실이 드러난다.

영화를 연출한 러시아 감독 비탈리 만스키(53)는 촬영 전후에 계속 카메라를 켜두는 등의 방법으로 북한 정부가 어떻게 촬영에 개입하는지, 또 어떻게 주민들의 행동과 생각을 통제하고 억압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영화 개봉을 맞아 내한한 만스키 감독을 25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났다.

-언제, 어떻게 촬영을 하게 됐나.

“2012년 처음 북한 정부와 접촉하기 시작해 약 2년 동안의 협의 끝에 2013년 말 촬영 허가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북한을 직접 방문해 정부 관계자와 협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북한과 합의서를 체결했는데, 애초의 합의서에는 2014년에 1년 동안 세 차례 방문해 촬영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세 번째 촬영 때 별안간 방문을 허가하지 않았고, 두 차례의 촬영만으로 현재의 영화가 나왔다. 첫 번째, 두 번째 모두 약 20일 동안 촬영했다. 마지막 방문이 허가받지 못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처음에 연출하려던 영화는 어떤 내용이었고, 북한 측이 제안한 영화는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현재의 영화로 기획 의도를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원래는 한 소녀가 어떻게 북한의 조선소년단에 가입하게 되는 과정을 담으려 했다. 진미는 원래 소년단에 가입한 뒤, 북한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아리랑대축제에서 수천 명이 벌이는 매스게임에 참여하도록 돼 있었다.

영화 촬영을 시작한 직후 북한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 눈치 챌 수 있었다. 또래 소녀 다섯 명을 인터뷰한 뒤 진미를 주인공으로 정했는데, 각각 언론사에서 기자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한다던 진미 아빠와 엄마의 직업이 봉제공장 직원과 유제품공장 직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집도 훨씬 좋은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촬영 도중 부엌 찬장을 열었는데 찬장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봤다.

이렇게 그들이 제 손을 통해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을 속이기를 원한다고, 그리고 그들이 그 어떤 북한의 실상도 볼 수 없도록 저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북한의 실상을 고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북한 사회의 모든 곳에 거짓과 연출이 만연해 있다고 느꼈다.”

-촬영에 대한 통제는 어느 정도였나. 북한 정부를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를 들키지는 않았나.

“촬영을 시작한 뒤 당초 합의한 것보다 훨씬 심한 통제를 받았다. 예를 들어 합의서에서는 ‘촬영한 필름의 통관 문제에 대해 북한 정부와 협력 한다’고만 돼 있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그 조항을 근거로 상상 이상의 요구를 했다. 매일 촬영이 끝난 뒤 촬영 분을 제출하도록 했고 제작진이 머물던 호텔 내에 특별한 방을 설치해서 모든 촬영 분을 매일 검열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 나라 밖으로 반출돼선 안 되는 것들이 촬영된 촬영 본은 압수하거나 파기했다. 촬영 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촬영하되 그 사람들이 눈치 채지 않도록 하고, 북한 측에 제출하기 전에 촬영 본을 모두 복사한 뒤에, 의심을 사지 않을 만한 촬영 본만을 제출해야 했다. 이를 위해 제작진 중 한 명이 화장실에서 시간을 끈다던가 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촬영 본을 반출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는데, 그 과정을 영화로 찍을 수도 있을 정도의 모험이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 반출했나.

“얼마 전에 미국 학생이 가방 안에 비 오는 장면을 찍은 촬영 본이 있다는 이유로 15년 형을 선고받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반출 과정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없다. 10년 쯤 뒤라면 모를까.” (여러 차례 물었지만 만스키 감독은 끝내 답변을 피했다.)

-‘태양 아래’를 완성한 뒤 2015년 에스토니아 탈린 블랙나이츠 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 북한 측이 상영을 중단해달라고 항의했다고 들었다. 반출 과정을 상세히 답할 수 없을 정도로 북한 정부의 압박이나 위협을 받은 적이 있나.

“현재 북한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 북한이 위협적인 존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촬영과 연관돼 있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가거나 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그 사람들은 여기에 전혀 연관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길 바란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모두 진미와 진미의 부모님이 무사한 지 궁금해 할 것 같다.

“주소나 전화번호는 물론, 부모의 경우에는 이름조차 모른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접촉할 수 없으니 정보를 알 길도 없다. 하지만 북한 정부가 러시아 외무부를 통해 영화 상영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러시아 정부의 거부로 실패했을 때, 북한 정부에서 제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모두 세 통을 받았는데 편지에는 저에게 아주 친절한 말투로 모스크바의 북한대사관에서든, 평양에서든 북한 측 사람들을 만나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말미에는 항상 ‘진미가 감독님을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꼭 들어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사하다고 짐작하고 있다.)”

-1963년 생으로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이 고향이니 구소련 시대, 과거의 공산국가에서 10, 20대를 보냈다. 북한은 당신이 살았던 소련과도 다른가.

“처음 북한을 갈 때는 그냥 구소련 시대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자동차를 타고 과거로 가는 정도가 아니라, 우주선을 타고 가는 수준이었다. 스탈린 시대, 소련에서 가장 가혹한 통제가 있었던 시대에도 러시아에서는 위대한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 영화, 학문적 성과들이 나왔다. 외적으로는 북한과 과거의 공산국가가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전혀 다르다.

나 역시 구소련 시대에는 북한 주민들처럼 대열에 서서 구호를 외치곤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난 뒤에는 대열에서 이탈할 수 있었고, 나의 개인적인 삶이 있었다. 사람들과 소박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고 미래의 자유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어느 한 순간도 이 체제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체제의 일원이 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체제 속에 갇혀 있게 된다. 당연히 이런 부분은 저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수많은 북한 주민들, 그러니까 그 체제 아래의 주민들에 대한 아픔과 연민을 느꼈다. 특히, 내가 봤던 건 무엇이 진짜 삶인지, 자유가 뭔지 전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세대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배운 유일한 진리이자 진실이 곧 거짓인 것이다.”

-주민들의 실제 삶이 그렇게 통제받고 있기 때문인지, 영화를 보며 연출된 장면과 연출되지 않은 장면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제가 묵었던 호텔의 창문을 통해서 촬영한 장면 외에 통제를 받지 않고 촬영된 장면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휴지통을 뒤지는 장면이나 사람들이 버스를 손으로 밀고 가는 장면, 가게 앞에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장면 등이 창문을 통해 찍은 장면이다.

영화 초반 진미가 학교로 등교하는 모습이나 학교에서의 모습 모두 연출된 것이다. 시나리오를 짜기 위해 북한 정부와 협의할 때 진미가 등교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었다. 애초의 의도는 진미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으려는 거였지만, 촬영을 시작했을 때 북한 당국자들이 나를 데려간 곳은 일반 도로가 아니라 막다른 길이었다. 깨끗하게 닦은 버스와, 버스에 탑승하기 위한 데려온 사람들이 모두 서 있었다. 그리고 정류소에 버스가 정차하는 장면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모든 촬영이 그런 식이었다.”

-북한 주민의 삶을 보며 특별히 느낀 점이 있나.

“내가 눈여겨봤던 것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산다는 점이었다. 학교에 특별한 공간이 있고 아이들이 거기서 지내고 있었다.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진미 엄마의 직장으로 설정된 유제품 공장과 아빠의 직장으로 설정된 봉제공장 두 군데에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여자 봉제사들이 거주하는 장소를 제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다. 게다가 거기서 아직 학교를 가지 않은 미취학 아동과 살고 있는 여자를 보기도 했다. 만약 아이들은 학교에서 살고 있고 일하는 여성은 직장에 살고 있다면 북한에서 대체 가족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 거리에서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것이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 그러니까 엄마와 아빠, 아이가 함께 걸어 다니는 걸 본 적이 없다. 영화에서 태양절을 맞이해 많은 사람들이 김일성 동상에 인사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남자들의 무리나 여자들의 무리 뿐 가족이 보이질 않는다. 유일한 가족은 진미 가족 뿐 이었는데, 촬영을 위해 온 것이 확실했다.
물론 알다시피 북한에서는 아무리 질문을 해도 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내가 눈으로 본 것을 얘기할 뿐이다. 이외에도 내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장면들이 많았다. 제가 묵은 호텔 근처에 국립극장이 있고 거리에 가로등이 있었는데, 매일 저녁마다 가로등 밑에 사람들이 모여서 책을 읽거나 뭔가를 쓰거나 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전기를 쓸 수 없기 때문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한 광경이었다.”

-진미는 완전히 일반인인 건가. 그런 어린아이가 카메라 앞에서, 낯선 환경에서 그 정도의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놀라운 일이 맞지만 더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연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진미 아빠에게 정부 관계자가 다가가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진미 아빠가 그대로 따른다면 그건 (북한 정부에 뽑힌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진미 아빠가 일하는 것으로 연출된 봉제공장에는 100여 명의 봉제사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미 아빠가 엔지니어가 아니고 어느 한 순간도 공장에서 일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아빠를 엔지니어로 대하고, 축하한다고 박수를 치고, 그런 연기를 해냈다.”
-북한을 관광하는 것이 특히 서구권 관광객에게 매력적인 여행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을 여행한 뒤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발언을 하거나 책을 쓴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있는가.

“(북한을 긍정적으로 말하는 이들에게) 북한에 와서 한번 3개월 동안 어떤 나라로 출국하지도 못한 채 살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래야 정당하지 않겠나. 그 뒤에 다시 책을 쓴다면 흥미롭게 읽을 용의가 있다. 예전에 쿠바에 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한 부자와 쿠바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가 ‘쿠바는 정말 재미있는 나라다. 이대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만약 당신 은행을 국가가 몰수하고, 여권을 빼앗고 치약이나 칫솔마저 배급을 받아가고,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해야 한다면 그 때도 재미있게 여겨지겠냐고.
북한에 관광객으로 가는 사람들에게도 한마디 하자면, 물론 인간으로서 호기심이나 관심이 생기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관광객들은 그들이 지불하는 달러로 북한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달러로 굶주리는 아이들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의 벤츠 자동차를 구입하도록 돕고 있다는 얘기다. 그들에게는 북한으로 관광을 갈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의 의미 역시 정확히 알아야 하지 않겠나.”

-이번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길 바라는가.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재앙에 대해 사람들이 연민을 느끼고 공감하길 바란다. 그리고 개인의 삶과 인권, 자유의 가치를 이해하기 바란다. 우리 인생에는 굉장히 많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모든 것이 이상적일 수는 없다. 어제 서울 거리를 걸으며 종이 박스를 덮고 자는 노숙자들을 봤다. 그런 사람들을 보다보면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거나, 북한처럼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보라고 하고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진미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인간적인 감정을 내비친다.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이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진미가 눈물을 통해 자기의 실재하는 삶에게 안녕을 고하고 국가 시스템의 한 부품이 되기 위해 들어가는 순간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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