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모든 권력은 회계로 通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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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는 역사를 어떻게 지배해왔는가/제이컵 솔 지음·정해영 옮김/456쪽·2만2000원·메멘토

이탈리아 화가 야코포 데 바르바리가 그린 ‘파치올리의 초상’(1495년). 회계에 밝았던 성직자인 파치올리가 제자인 귀도발도 다 몬테펠트로 공작과 함께 있는 모습이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회계장부가 보인다. 메멘토 제공
이탈리아 화가 야코포 데 바르바리가 그린 ‘파치올리의 초상’(1495년). 회계에 밝았던 성직자인 파치올리가 제자인 귀도발도 다 몬테펠트로 공작과 함께 있는 모습이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회계장부가 보인다. 메멘토 제공
지난해 이탈리아 피렌체를 취재차 찾았을 때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것은 메디치 가문의 저택과 도서관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절대왕정의 군주가 아닌 메디치가 사실상 군주로 군림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였다. 아마도 메디치는 근대 자본주의 이전에 돈으로 권력을 산 최초의 사례가 아닐까.

금융업으로 돈을 번 가문답게 메디치는 명확한 회계 기준과 절차를 갖고 있었다. 회계의 혁명으로 불리는 복식부기도 메디치가에 의해 고안됐다. 조반니 메디치는 자신이 만든 금융기준을 준수하라고 유언으로 남길 정도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메디치가의 몰락은 회계를 우습게 본 데서 비롯됐다. 예술에 대한 아낌없는 후원으로 15세기 르네상스 미술의 절정을 가져온 로렌초 메디치는 회계나 상업지식을 얕잡아 봤다. 그는 막대한 가산을 탕진한 끝에 피렌체의 재정마저 붕괴시켰다. 회계에 대한 몰이해가 도시국가의 수난으로 이어진 셈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회계를 통해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꿰뚫어 보는 독특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모든 길은 회계로 통한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특히 저자는 회계가 정치권력의 투명성과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에 주목한다.

멀리 가지 않아도 한국의 외환위기와 미국의 엔론 회계부정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론에 빠져 분식회계를 일삼았던 한국 대기업의 부실은 외환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당시 김영삼 정부의 레임덕을 부추기면서 김대중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미국 엔론의 회계부정 사태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에 치명타를 가했다.

17∼18세기 유럽 전제군주들의 부침도 회계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예컨대 루이 16세의 재무총감이던 네케르가 1781년 왕실 장부를 공개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불씨를 댕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도 방대한 영토를 지배하면서 적절한 시점에 재정개혁을 단행하지 않아 재정파탄을 맞았다. 재정수입의 68%를 외국에서 빌려온 빚을 갚는 데 쓸 정도였다. 그의 아들 펠리페 2세는 신하들의 회계개혁 요구를 무시하고 무적함대 원정 등에 힘을 쏟다가 점차 제국의 쇠락을 맞게 됐다.

그렇다면 국가 시스템의 중추인 회계와 관련된 역사의 교훈은 무엇인가.

상업지식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고, 실용 수학이 인문학과 융합된 국가와 사회가 역사적으로 번영을 누렸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15∼16세기 피렌체, 제노바 등 이탈리아 도시공화국이나 17세기 네덜란드, 18∼19세기 영국 등은 모두 회계를 종교 사상 예술 정치와 적절히 결합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예컨대 피렌체가 속한 15세기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는 학교의 절반이 주산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특히 은행가나 상인, 변호사들은 철학과 수학, 회계 등 다양한 학문을 교육받았다. 특히 복식회계를 연구한 성직자 루카 파치올리(1445∼1517)는 재무회계가 공화정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저자는 각종 파생금융상품의 등장 등으로 투명한 기업회계가 쉽지 않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역사적 관점에 입각한 회계에 대한 이해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메디치#회계는 역사를 어떻게 지배해왔는가#제이컵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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