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의 매혹]한조각, 한조각… ‘흐릿하고 비밀스러운’ 천재의 흔적을 들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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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를 향한 의지’

셰익스피어의 삶은 미스터리하다. 직접 작품을 썼는지조차 끊임없이 논란이 분분하다. 최근 출간된 ‘세계를 향한 의지: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민음사)에서 미국 하버드대 교수로 셰익스피어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흐릿하고 비밀스러운 삶’과 당시 시대상을 치밀하게 추적해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 흔적을 핀셋으로 끄집어낸다.

당시 파격적으로 여덟 살 연상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고 그의 아버지가 대금업을 했다는 사실 등을 제외하고 책은 상당 부분 추론에 의존한다. 그럼에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셰익스피어가 진짜 작품을 썼다고 차츰 믿게 된다. 집요할 정도로 촘촘하게 셰익스피어의 삶을 복원해낸 저자의 땀방울 덕분이다.

17세기의 장갑. 화려한 장갑을 만든 아버지 덕분에셰익스피어는 가죽에 대해 훤히 알았고 이는 작품에도 반영됐다. 민음사 제공
17세기의 장갑. 화려한 장갑을 만든 아버지 덕분에셰익스피어는 가죽에 대해 훤히 알았고 이는 작품에도 반영됐다. 민음사 제공
“양피지는 양의 가죽으로 만드는 것이잖은가?”라고 햄릿이 묻자 친구 호레이쇼는 수긍하며 “송아지 가죽으로도 만들지요”라고 답한다. 장갑 가게도 운영한 아버지 덕분에 가죽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곰을 묶어 놓고 사나운 사냥개와 싸우게 하는 유흥거리를 즐겼던 시대상도 보인다. 맥베스는 적들이 포위해 오자 외친다. “곰처럼 나는 이 과정을 싸워내야 하리라!”

‘헨리6세’에서 “서두른 결혼은 거의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한 건 ‘속도위반’으로 결혼 6개월 만에 딸 수재너를 낳은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재산 대부분을 큰딸에게 물러주고 아내에게는 거의 남기지 않은 이유는 ‘좋으실 대로’에서 “아가씨인 동안은 5월이지만 아내가 되면 날씨가 확 바뀐다”고 노래한 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성장에는 동갑내기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성들을 몰살시키고 이집트 공주를 신부로 맞이하며 끝나는 말로의 ‘템벌레인’에 환호하는 관객을 보고 셰익스피어는 경쟁심에 불타오른다. 그의 윤리관을 단박에 전복시켰기 때문이다. 29세에 말로가 세상을 떠나자 ‘좋으실 대로’에서 말로 작품의 유명한 대사를 인용한 건 라이벌에 대한 헌사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연극에 매료됐고 원만하지 않은 가정생활을 했던 ‘인간’ 셰익스피어의 궤적이 곳곳에 담겨 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동아일보 DB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연극에 매료됐고 원만하지 않은 가정생활을 했던 ‘인간’ 셰익스피어의 궤적이 곳곳에 담겨 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동아일보 DB
셰익스피어가 불멸의 생명력을 가진 작품을 토해낼 수 있었던 건 천재성과 함께 엄청난 성실성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희곡 작업에 매달린 결과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내세울 것 없는 시골 출신이지만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고 시골 생활의 경험을 상상 속의 세계로 그려내는 재능도 지녔다. 사람들의 잡담이나 사소한 사건도 지루해하지 않고 모두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냈다. 엄청난 다독가였던 셰익스피어는 당시 출간된 책들을 통해 세계를 아우르는 넓은 안목을 키웠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로 가보자며 손목을 잡아끄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가 서로를 죽이던 잔인한 현실은 물론이고 연극을 보기 위해 목을 빼고 몰려들었던 군중의 모습이 실사 영화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이 모든 현장을 바라보며 골똘히 사색하고 글을 쓰던 한 남자를 만날 수 있다. ‘흐릿하고 비밀스러운’ 셰익스피어의 삶을 조각조각 맞춰 선명하게 보여준 솜씨가 일품이다.

책장을 덮은 후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시저’ ‘햄릿’을 함께 묶은 ‘셰익스피어 전집 4: 비극 1’(민음사) 등을 읽으면 셰익스피어의 인생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400년의 매혹#셰익스피어#세계를 향한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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