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자살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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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거꾸로 간다”… 번번이 국정 발목 잡으려다 되레 ‘힘센 대통령’ 만들어줘

미국 공화당이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사진) 취임 이후 국정의 발목을 잡으려 했지만 대통령의 힘만 키워주면서 결국 공화당의 ‘자살골’이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7일 야당인 공화당이 지난 7년간 오바마 정부의 예산안에 해마다 제동을 걸고 대통령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했지만 역풍만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공화당이 오바마 대통령을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되레 오바마를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강력한 대통령의 반열에 오르도록 키워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화당은 2009년 오바마 취임 후 “오바마 정책에는 모두 반대한다”는 방침을 공공연히 밝혔다.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에 대해선 2013년 정부 폐쇄(셧다운) 사태까지 불러오며 강력하게 반대했고, 최대 500만 명의 불법 이민자 추방을 유예하는 이민 개혁에도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야당의 반대에도 대부분의 정책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냈다.

2014년부터 의회 상하원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공화당이 번번이 오바마에게 패배한 것은 대통령 고유권한인 행정명령과 대통령지침(presidential memorandum) 발동이라는 오바마의 전술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취임 후 연평균 33건의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또 행정명령보다 등급이 낮은 대통령지침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500여 건을 발동해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관철했다. 대통령지침은 등급만 낮을 뿐 중요도는 행정명령과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의회가 부당하게 행정부의 정책 집행을 방해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민 개혁의 경우 공화당이 불법 이민자의 추방 유예를 반대하자 오바마는 행정명령 카드로 맞받았다. 공화당이 반발해 2015년 1월 행정명령을 백지화하는 법안을 하원에서 의결했지만 오바마는 거부권 카드를 꺼냈다. 공화당은 강력한 후원 세력인 미국총기협회(NRA)를 등에 업고 오바마의 총기규제 강화를 반대하고 있지만 행정명령을 통한 부분적 규제는 막지 못했다.

공화당은 이란과의 핵 협상,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등 외교 문제를 놓고 정치적 명분 싸움에서 오바마에게 패했다. 이란과의 핵 협상이 우방 이스라엘을 위협해 중동 지역의 긴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오바마는 “이란이 핵무기를 제조하는 순간 협상을 무효화시킬 것”이라며 행정명령으로 이란 핵 협상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1월부터 이란이 2012년 이후 금지됐던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 수출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는 공화당 대선주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이 여전히 반대하고 있지만 행정명령을 통한 부분 규제 완화에 이어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쿠바 방문까지 성사돼 공화당으로선 ‘건너올 수 없는 강’이 돼버렸다. 이들은 오바마의 ‘외교 레거시(업적)’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이 오바마의 행정명령과 대통령지침 카드에 번번이 당한 것은 ‘무조건 반대’가 야당 역할이라는 오래된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폴리티코는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추가 연방정부 셧다운을 막기 위해 예산안 합의 처리를 주도하자 티파티 등 공화당 내 강경파들은 그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하원의장직에서 쫓아내는 일도 벌어졌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선임고문을 지낸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16일 CNN 인터뷰에서 “공화당의 무조건적인 비판과 반대가 결과적으로 임기 말에도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오바마#공화당#대통령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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