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 ‘쓸모 있는 자신’의 발견… 행복의 첫걸음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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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이 세상에서 요구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중략)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나의 구원을 필요로 하고 그 필요가 나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말(장폴 사르트르·민음사·2008년) 》

1910년 프랑스 파리에서 다섯 살 난 장폴 사르트르가 엄마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살았다. 아버지는 사르트르가 한 살 때 병으로 죽었는데, 그 역시 건강이 나빴다. 한쪽 눈이 안 보였고 몸집은 또래보다 작았다.

어린 사르트르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자기가 아무 목적 없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얼굴도 못 본 아버지가 “정액 몇 방울을 흘려서” 만든 우연한 존재가 자기라고 여겼다.

그의 어린 시절은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할아버지의 서재에 틀어박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모험소설을 탐독하며 자신이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웅이라고 상상했다. 어른들의 칭찬을 듣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고전들을 펼치기도 했다.

‘읽기’는 곧 ‘쓰기’로 이어졌다. 인류를 불행에서 구하는 명문(名文)을 써서 후세까지 자기에게 신세 지도록 하겠다는 게 열 살 사르트르의 생각이었다. 그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귓가엔 “너는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는 성령의 계시가 울렸다. 물론 스스로 상상해낸 환청이었다. 자서전 ‘말’에서 사르트르는 이런 자신의 삶이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결말이다. 몸이 건강해도 행복해지기가 힘든데, 한쪽 눈이 보이지 않고 신경증까지 앓던 사르트르는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짐을 떠안고도 열 살부터 행복했다. 요즘엔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가 드물다.

사람이 불행해지는 건 꼭 할 일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무가치한 일을 강요받거나 가치관에 반하는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세상에 없는 편이 나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사르트르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쓸모가 무엇인지 알아냈기에 행복할 수 있었다. 사명(使命)을 못 찾아 무력해진 사람들에게 사르트르를 권한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장폴 사르트르#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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