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친구처럼 편안해야 ‘좋은 건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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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건축/양용기 지음/456쪽·1만9000원/평단

집안 책꽂이를 정리하다 25년 넘게 조금씩 쌓인 건축 관련 책 일부를 다시 들춰 봤다. 처음 읽은 건축 책이 뭐였더라. 고등학생 때. 해외 이미지 자료를 모아 묶은 내부 공간 디자인 잡지였다. 어떤 분야에 대한 배움에 정도(定道)가 있으랴 오기가 나면서도 문득 서글퍼졌다. 대학 졸업 무렵 겨우 접한 책 몇 권을 좀더 일찍 만났다면, 건축에 대해 부끄러움 모르고 끼적인 어리석은 글의 수가 조금이나마 줄지 않았을까.

저자는 독일에서 건축을 공부한 경기 안산대 교수다. 이 책이 ‘늦게 만나 아쉬웠던 몇 권’ 목록을 바꾸진 않았다. 하지만 숱한 건축 관련 서적이 덕지덕지 덧바르는 치장의 거품을 걷어낸 담백함이 미쁘다.

“학생들에게 ‘어떤 건축 책을 선호하는가’ 물었다. 대부분 ‘사진 많은 책’이라 답했다. 그림 많은 책을 보며 어떤 것을 자신의 지식으로 삼을 수 있을까. 아마 모방의 방법을 배울 거다. 디자인을 모방하는 건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가급적 쉽게 풀어 쓰려고 노력한 흔적과 더불어, 건축에 대한 피상적 인지에 머물기 쉬운 독자를 어떻게든 한 발짝이라도 더 본질적 이해 쪽으로 끌어들이려 애쓴 기색이 뚜렷하다. 건축이 막연히 매력적인 화젯거리로 소비되는 현실에서 정말 ‘좋은 건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비판적 판단의 실마리를 구석구석 심어놓았다.

“어떤 형태가 가장 아름답고 좋은 형태일까? 그런 건 없다. 장소에 잘 어울리고 목적에 맞도록 기능하며 사용하는 이에게 편안한 것이 좋은 형태다. 좋은 형태를 얻는 건 좋은 친구를 얻는 것만큼 어렵다.”

20년 전 서울 어느 대학 건축학과의 설계수업 첫 학기 평가 과제는 일정 간격으로 연필 선 긋기였다. 두 번째 과제는 유명 건축가의 도면을 베껴 그려 오는 거였다. 지은이의 수업에 그런 과제는 없겠구나 싶다. 그의 수업을 듣고 있을 학생들이, 책장을 넘기다 조금 부러워졌다. 그러나 이미지 자료의 출처를 명기하지 않은 것은 책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린 실책으로 보인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철학이 있는 건축#양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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