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자서평]영원히 불가해한 ‘타인의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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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새벽의 나나/박형서 지음/406쪽·1만1000원/문학과지성사

지난 일주일 동안 632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인생을 리셋하고 싶어 한다. 이번 생은 글렀어, 답은 환생이야, 그런 식의 자조도 이 ‘헬조선’에서는 흔하다. 하지만 다음 생이 반드시 더 ‘나으리라’는 순진한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화장실 벽에 붙어 있는 잠언을 살짝 바꿔서, 지금 이 생이 전생의 내가 바랐던 ‘다음 생’이라면?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까지이며, 또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소설 ‘새벽의 나나’에서 아프리카에 가기 전 태국을 경유한 여행객 레오는 운명의 여인 플로이를 만나면서 벼락과 같이 자신의 어떤 능력을 깨닫는다. 그것은 전생을 보는 능력이다. 플로이는 과거 왕국의 공주였고, 레오와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의 도피를 했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레오는 플로이와 다시 사랑하고자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레오는 매춘부라는 플로이의 직업에 대한 편견 때문에, 또 자신을 믿지 않는 플로이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고통받는다. 아무리 사랑해도 결코 이해할 수 없고 관여할 수 없는 타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가혹한 현실 앞에, 레오는 자신을 이루고 있던 요소들이 붕괴하는 것을 경험한다.

소설에는 플로이 외에도 다양한 절대적 타자들이 등장한다. 외국인에 의해 성전환 수술을 한 매춘부, 악랄한 경찰관, 실수로 딸을 죽인 후 방 안에 자신을 유폐한 독일인, 화분에 심긴 채 금요일마다 살아나는 남자, 산 것과 다름없이 돌아다니는 유령…. 레오는 겹겹이 겹쳐진 여러 전생의 체험을 통해 자신이 이 세계에 현전한 유일무이하고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 무수한 윤회의 굴레 속 하나의 파편임을 깨닫는다. 나아가 자신과 타인의 생의 경계를 지우고 각각의 삶에 부여된 위계도 허물고자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녹록하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타자를 바라보거나, 자신의 도움을 거절하고 폭력 한가운데로 걸어가는 사랑하는 여자의 뒷모습은 사랑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봉합할 수 있다는 거대한 판타지가 허구임을 폭로한다. 레오는 끝없이 돌고 도는 전생의 굴레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거대한 비밀, 인간이기 때문에 끝내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다가가려 할수록 상대를 상처 입히게 되는 비극을 받아들인다. 현재의 자신은 무수한 나‘들’ 속의 하나에 불과하고, 결국에는 죽음의 발 앞에 내던져지는 유한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은 타자와 공존하는 윤리적인 방법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 일주일 동안 632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이진송 서울 서대문구
#새벽의 나나#박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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