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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현우는 ‘나무’가 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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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현우는 ‘나무’가 뭔지 몰랐다

노지현기자 입력 2016-04-11 03:00수정 2016-04-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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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의 백허그에 수줍어하는 아이, “나무 그려보라”는 말에…
‘원영이 사건’ 이후 학대 신고 급증… 복지사의 하루 쫓아가보니
1일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최대언(왼쪽), 최혜원 사회복지사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신고 내용을 함께 살펴보고 있다. 광주=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현우야, 선생님 왔어. 오늘 밥 먹었어? 일주일 사이에 키가 더 큰 것 같은데….”

1일 광주시 아동보호소인 한 아파트.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자 김현우(가명·9) 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웃지는 않았다. 광주아동보호전문기관 최대언 사회복지사(30)가 뒤에서 꼭 안아주자 입꼬리가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뒤로 고개를 돌려 최 씨의 얼굴을 쳐다보지는 못했다. 학대받은 아이들은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걸 어려워한다.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기에 표정도 없다.

이날 최혜원(32) 최대언 사회복지사와 학대 아동의 보호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김 군은 장기결석아동전수조사를 통해 몇 주 전 발견한 아이다. 원래 나이라면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단 한 번도 학교를 간 적이 없다. 지능이 떨어지는 엄마는 아이를 집에만 가둬두었다.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어 다리근육이 퇴행해 절뚝거리며 어렵게 걸었다. 발견 당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아기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나무를 그려보라”는 말에 현우는 끝내 그리지 못했다. ‘나무’가 무엇인지 몰랐다.

계모와 친부의 학대로 차가운 화장실에서 죽은 신원영 군(7) 때문이었을까. 시민들의 마음자세가 달라졌다.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조사에 나서는 사회복지사들은 “교사와 이웃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신고하면서 신고건수가 지난해보다 2∼3배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김재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관장은 “3월 광주에서만 신고가 65건 들어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31건)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전국 신고건수는 2014년 1만7791건, 2015년 1만9209건이었다. 지금 추세라면 올해 2만 건을 훨씬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후 2시. 두 복지사는 서둘러 차에 올랐다. “초등학생 아이가 학교에도 잘 안 가고 악취를 풍긴다”는 제보였다. ‘부모가 집에 없는 것 같다’는 정황도 확인됐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엄마는 처음에는 “내가 무슨 아동학대냐”며 이야기 자체를 거부했다.

현장방문 시 경찰관도 함께 동행하도록 2014년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은 높다. 욕설과 폭행도 만연한다. 2010년 전남에서는 자녀를 격리시킨 사회복지사에게 불만을 품은 친부가 망치로 머리를 내려쳐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최대언 사회복지사는 “문이 닫히면 아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에게 열어달라고 읍소도 하고 때로는 ‘이러면 경찰에 고발할 수밖에 없다’며 엄포도 놓는다”고 말했다.


어렵게 만난 아이 엄마는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아이를 두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신체적 폭행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두 복지사와 동행한 경찰관은 계속 예의주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아동학대의 가해자 80%는 친부모라 충격적이다. 복지사들의 휴대전화에는 아동폭행 증거사진이 수북했다. 다문화가정의 한 엄마는 피부질환을 치료한다며 쇠 빗으로 아이의 피부를 문질러 온몸이 새빨갛게 부어오르게 만들었다. 한 엄마는 술을 마시고 6개월 된 딸 항문에 정체불명의 물건을 쑤셔 넣어 피투성이로 만들기도 했다. 얼굴에 여러 차례 뺨을 맞았는지 볼에 손가락 다섯 개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아이도 있었다. 자기 일이 안 풀린다며 아이를 샌드백처럼 때린 아버지도 있다.

시민들은 “학대받는 어린이를 부모로부터 격리해 시설로 보내라”고 말하지만 사회적 준비는 아직 덜된 상태다. 안전하게 보호하며 키울 시설 자체가 부족하다. 현재 전국 56개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1곳당 근무하는 상담원은 평균 15명으로, 상담원 1명이 지역 내 평균 1만8000명의 아동을 담당하고 있다. 한 번 신고가 들어오면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계속 관리를 하는데 복지사 한 명이 60명 이상을 관리한다.

전문가들은 또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을 제외하면 대다수 학대아동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2015년 488억 원이었던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올해 372억 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2014년 174억 원보다는 커졌지만 매년 들쭉날쭉한 셈이다.

김재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관장은 “의사 교사 이웃주민의 적극적인 신고도 중요하지만 학대아동을 보호할 시설과 인력 등 사후관리 시스템 확충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광주=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복지사#원영이사건#학대#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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