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남긴 욕설 댓글 찾아내… 합의금 노리는 ‘사이버 헌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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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모욕-명예훼손” 신고 증가속 고소꾼까지 등장

회사원 이영호(가명·28) 씨는 올 초 경찰서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악플’을 올려 고소장이 접수됐으니 경찰서에 나와 조사를 받으라는 얘기였다. 의아했던 이 씨는 막상 경찰서에서 자초지종을 듣곤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씨가 2013년 인터넷에 남긴 댓글 탓에 고소당한 것이다.

당시 온라인 게임대회를 지켜보던 이 씨는 한 아마추어팀의 매너 없는 모습을 봤다. 이를 한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 언급하면서 ‘병신’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것이 이 씨의 발목을 잡았다. 이 씨는 “악플을 단 행위는 분명 잘못됐지만 3년 전에 글 하나 적은 것을 가지고 이제 와 고소를 당하니 너무 당황스럽다”며 억울해했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욕설이나 조롱을 퍼부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고소하는 일이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및 모욕 신고 건수는 2014년 8880건에서 지난해 1만5043건으로 69%가량 증가했다.

과거 사이버 공간에서의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대한 고소는 주로 연예인 등 공인의 몫이었다. 언론 기사에 과도한 욕설을 담은 댓글을 남기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근거 없는 사실을 유포하는 누리꾼을 상대로 한 고소장 제출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반인 사이의 고소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논란이 됐던 홍가혜 씨(28·여)의 무더기 고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홍 씨는 “민간 잠수사들이 배 안 생존자와 교신했다”는 등의 인터뷰로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자신을 비방하는 댓글을 쓴 누리꾼 800여 명을 모욕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명예훼손 및 모욕은 증거 확보가 쉬운 편이다. 기록이 남는 인터넷의 특성상 구글이나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자신과 관련된 악플을 찾아 이를 증거로 고소장을 작성하는 식이다. 3년 전 댓글을 근거로 이 씨를 고소한 이의 경우에는 해당 건 외에도 51건의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2014년 경찰에 52명의 누리꾼을 고소한 A 씨(26)도 2010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던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근거로 삼았다.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은 이를 인지한 지 6개월이 지나면 고소 요건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이 댓글을 확인한 게 6개월 이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합의금을 노리고 고소를 남발하는 ‘합의금 헌터’까지 등장했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거짓 사실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타인을 고소해놓고 200만∼500만 원에 합의하자고 종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방법은 쉽다. 여럿이 함께하는 온라인 게임에 접속한 뒤 일부러 흐름을 망치는 식으로 다른 이들의 욕설을 유도하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악플을 단 이들이 청소년일 경우 부모들이 되도록 합의하려고 나서는 점을 노린다”며 “의심이 가더라도 고소장 접수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 관련 고소를 대행하는 법무법인까지 나올 정도다.

이상진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는 “사이버 관련 고소가 난무하지 않도록 고소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고소 전에 서로가 합의하는 식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틀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창규 kyu@donga.com·김남준 채널A 기자
#사이버헌터#합의금#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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