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범도 벌벌 떤다는 이 은행…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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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24시간 비상상황실’ 르포

29일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사 ‘대포통장 근절 비상상황실’에서 상황실 직원들이 대포통장 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모니터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9일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사 ‘대포통장 근절 비상상황실’에서 상황실 직원들이 대포통장 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모니터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달 14일 서울의 한 NH농협은행 지점. 점심시간에 창구 앞에서 한 여성과 직원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여성이 “방금 계좌에 입금된 돈 1000만 원을 인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은행 직원은 “돈을 송금한 사람과 통화를 한 뒤 주겠다”고 답했다.

이 계좌에 돈이 입금된 시점은 불과 20분 전이었다. 또 계좌 개설 지점과 고객의 주소 역시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 그동안 이 계좌에는 5만 원이 안 되는 소액 거래 기록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큰돈이 들어온 점도 직원의 의심을 샀다. 직원은 당장 본점의 ‘대포통장 근절 비상상황실’로 연락했다. 상황실이 송금을 한 사람과 연락을 했더니 “자녀가 납치됐다고 해 돈을 보낸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성은 출동한 경찰에 의해 대포통장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사기범으로 검거됐다.

‘대포통장 전용 계좌’라는 오명을 들었던 농협은행이 최근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기피하는 은행 1순위가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년 12월만 해도 적발된 대포통장 계좌 가운데 농협(농·축협 포함) 계좌가 차지하는 비율은 63.8%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에는 그 비율이 11.9%까지 떨어졌다. 2015년 한 해만 NH농협은행이 적발해낸 보이스피싱 사기는 총 1002건, 금액으로 따지면 64억3500만 원이다. 사기범이 “농협 계좌는 피해 달라”고 피해자들에게 요구하는 사례가 나올 정도다.

이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농협은행이 전사적으로 펼치고 있는 ‘대포통장과의 전쟁’이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농·축협 등 지역의 농협 계열사까지 따지면 전담 인력(주간 15명, 야간 6명)은 국내 최대 규모다. 국내 다른 은행들은 대포통장만 전담하는 조직을 갖춘 경우가 드물다.

28일 오후 2시경 찾은 서울 중구 농협은행 대포통장 근절 비상상황실은 직원 8명이 모니터링에 분주했다. 은행 창구뿐만 아니라 자동화기기(ATM)를 이용해 사기범들이 돈을 인출해 가기 때문에 상황실 직원들은 야간에도 교대로 자리를 지킨다. 점심시간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의 모니터에는 실시간으로 전국의 농협은행 지점에서 보내는 의심거래 내역 정보가 뜬다. 이를 보던 직원들이 최근 거래 내역, 금액 등의 정보를 보고 거래를 승인할지 판단했다. 거액이 입금된 뒤 바로 ATM에서 돈을 인출하려 하거나, 수년 동안 거래 내역이 없었던 계좌에 큰돈이 갑자기 들어온 경우가 주된 감시 대상이다. 상황실 관계자는 “매일 업무를 마감할 때 그날 하루의 점검 실적에 대해 피드백을 하는 등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대포통장을 거래한 사람은 최대 12년간 통장 개설 등 금융 거래에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해 왔다. 농협은행 이외 다른 금융회사들도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해 전담 조직을 설치하는 등 노력에 나서고 있다.

다만 갈수록 지능화되는 대포통장 관련 범죄에 애를 먹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대포통장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직접 돈을 찾으러 오지 않고, 피해자를 시켜 돈을 인출해 갖고 오게 한다. 김범수 금융감독원 팀장은 “대포통장 사용 건수가 줄고 있지만 안심하긴 이른 단계”라며 “최대 50만 원을 지급하는 신고포상금 제도(국번 없이 1332) 등을 이용해 범죄 행위를 적극 신고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박희창 기자
#농협#보이스피싱범#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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