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고시원族 학원비-식비 쓸때, 오피스텔族 여행-쇼핑 ‘펑펑’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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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형태 따른 1인가구 소비패턴 빅데이터 분석해보니

2년 전 취업에 성공한 최모 씨(28·여)는 올해 초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지난 주말에는 대학 때 가장 친했던 동기 2명을 불러 밤새워 놀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이벤트다.

예전에 살던 다세대 원룸은 3명은커녕 혼자 눕기도 빠듯한 크기였다. 눈을 떠 고개를 돌리면 바로 옆 밥솥의 빨간 램프가 아침 인사를 건넬 정도로 비좁았다. 취업 전에는 부모님께 용돈을 타 쓰는 신세였고, 취업한 뒤에는 오피스텔 보증금이라도 마련하겠다고 수입 대부분을 저축하면서 생활이 늘 빠듯했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오피스텔 입성에 성공한 뒤에는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주말이면 티켓 가격이 수만 원을 호가하는 문화공연도 즐기고 한 줄에 4000원짜리 김밥도 서슴없이 사먹는다. 최 씨는 “살림이 확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보증금 몫으로 모았던 돈들을 이젠 안 모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사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며 “원룸에 살았을 때와 비교하면 내가 완전히 다른 ‘종족’이 돼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20, 30대 1인 가구의 소비 행태는 사는 곳에 따라 뚜렷한 차이가 난다. 신한카드가 지난해 11월∼올해 1월 서울에 거주하는 20, 30대 1인 가구 1만여 명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거주지에 따라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원룸이나 고시원에 살고 있는 20∼39세 ‘학(學)옥살이족’은 1인당 월평균 카드 이용액이 16만4087원이었다. 오피스텔에 사는 같은 연령대의 ‘도화지족’은 26만9269원으로 10만 원 이상 많았다. 원룸과 고시원에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주로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취업준비생이나 대학생인 반면 오피스텔에 사는 1인 가구는 전문직, ‘골드미스’ 등 자발적 비혼(非婚)이 각각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학(學)·식(食)’에 집중하는 ‘학옥살이족’

학옥살이족은 ‘옥살이하듯 공부를 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신한카드가 붙인 이름이다. 대학생 박모 씨(28)가 전형적인 사례다. 그의 하루는 오전 8시 반 서울 성북구의 원룸을 나서면서 시작된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학교로 아침을 굶고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도서관을 찾는다. 학교 곳곳에 새 학기의 흥분이 넘쳐나지만 그에겐 ‘남의 일’이다. 점심과 저녁은 거의 대부분 학교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올해 그의 주 타깃은 토익이다. 5월에 토익 시험 유형이 달라지므로 그 전에 높은 점수를 받아놔야 하기 때문이다. 박 씨가 일주일에 두 번 과외를 통해 번 돈의 대부분은 토익 학원비나 교재비, 시험 응시료 등으로 빠져나갔다. 그의 귀가시간은 평균 오후 10시다.

학옥살이족의 가장 큰 특징은 박 씨처럼 학원비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한 달 동안 1인당 학원비 결제 건수가 학옥살이족은 1.1건으로 오피스텔 거주자들(0.6건)을 훌쩍 넘는다. 박 씨는 “현재 목표가 취업인 만큼 그에 맞춰 지출을 하는 것”이라며 “자리를 잡으면 방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옮기고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연극도 마음껏 보러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학옥살이족은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식비로 지출했다. 원룸에 살고 있는 대학생 황모 씨(27)는 부모에게 받는 용돈 45만 원 중 30만 원 정도를 밥값으로 썼다. 황 씨는 “카누(KANU·인스턴트 원두커피) 같은 커피를 소셜커머스를 통해 2만 원에 구입해 한 달 동안 마신다”며 “술자리는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갖는다”고 말했다. 황 씨 같은 이들이 식사와 관련된 업종에서 카드로 결제한 비율은 전체 이용 건수의 41%에 달했다.

학옥살이족의 제한적인 소비 행태 이면에는 이들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대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수도권 원룸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대학생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의 72.2%가 ‘전세나 월세가 부담된다’고 응답했다. 특히 월세를 내고 있는 경우 부모님에게 주거비용을 의존하는 경우가 78.9%에 달했다. 한 달 평균 월세 금액은 42만 원으로 집계됐으나 50만 원이 넘는 경우도 19.3%나 됐다. 주거비 부담이 큰 만큼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레저, 반려동물에 돈 더 쓰는 ‘도화지족’


반면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20, 30대는 도화지족으로 분류됐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색깔로 그리며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의 특징은 쇼핑, 레저, 반려동물 등과 관련한 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도화지족 이모 씨(33)는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어 최근 부모에게서 독립했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쇼핑이다. 특히 입사한 뒤로는 정장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예전엔 아웃렛에 가서 할인 정장을 샀는데 요즘에는 비싸더라도 백화점에서 고급 브랜드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카드의 분석에서도 도화지족이 백화점, 면세점 등에서 결제한 비중은 전체 소비의 8.01%(결제액 기준)나 됐다. 원룸이나 고시원에 사는 학옥살이족보다 약 2%포인트 높은 수치다. 건당 결제액도 4만5619원으로 학옥살이족보다 약 1만8000원이 많았다.

이 씨의 또 다른 취미생활은 해외여행이다. 그는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1년에 한 번은 해외로 나간다”며 “올해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곳으로 다녀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화지족이 항공사, 호텔 등 레저 관련 업종에서 결제한 금액도 건당 5만4138원으로 학옥살이족보다 약 2만2000원이 더 많았다.

도화지족은 반려동물에게도 많은 돈을 썼다. 반려동물 관련 업종에서 도화지족의 결제액은 전체의 0.23%(결제액 기준)인 반면 학옥살이족은 0.08%에 머물렀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김모 씨(35)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지만 집 안에 개털이 날리는 걸 싫어하는 어머니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다”며 “독립하고 나서야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의 요즘 근심거리는 그가 회사일로 집을 비웠을 때 혼자 쓸쓸히 오피스텔을 지키고 있을 강아지다.

이들은 대체로 소득 수준이 높다. 국토교통부가 2012년에 조사한 ‘수도권 오피스텔 거주자 주거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의 37.4%가 한 달 소득이 300만 원을 넘었다. 410만 원이 넘는 경우도 14.6%나 됐다. 가구주의 직업은 사무 업무에 종사하는 상용근로자가 60.5%였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높은 소득이 이들의 소비 행태에도 그대로 반영돼 나타나는 것이다.

1인 가구 중에는 학옥살이족과 도화지족, 그 어느 쪽에도 속한다고 말할 수 없는 ‘변태족’도 있다. 이들은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듯, 1인 가구를 벗어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다. 즉, 예비 신랑신부들을 말한다. 이 중 원룸이나 고시원에 사는 변태족이 혼수 업종에서 쓴 건당 결제액은 46만8432원에 달했다.

약국 vs 종합병원

거주지에 따라 소비 행태가 달라지는 것은 40대 이상 1인 가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룸이나 고시원에 사는 40대 이상 1인 가구 한 명이 한 달 동안 결제한 평균 금액은 10만2273원이었지만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이들의 월평균 1인당 결제액은 33만5009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원룸이나 고시원에 사는 40대 이상 1인 가구는 의료 서비스에 지출한 금액 중 42.5%를 약국에서 사용했다. 또 종합병원에서 결제한 비중은 19.6%에 불과했다. 반면 오피스텔에 사는 경우에는 종합병원이 40.3%였으며 약국은 11.7%에 그쳤다.

대안주거협동조합 박철수 이사장은 “원룸이나 고시원에 혼자 사는 고령자들은 여유가 없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이번만 넘기자’는 생각에 병원을 잘 안 간다”고 말했다.

물건을 구입하는 곳도 차이가 났다. 원룸이나 고시원에 사는 40대 이상 1인 가구의 쇼핑 관련 지출을 분석해 보면 편의점을 이용하는 경우가 전체의 42%를 차지했고 백화점은 4%였다. 반면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경우 백화점이 38%, 편의점은 13%로 나타났다.
 
박희창 ramblas@donga.com·황성호 기자  

▼가맹점엔 상권분석 정보 제공… 소비자엔 맞춤형 혜택 서비스▼

카드사 결제 데이터 어떻게 활용되나


1인 가구의 소비 패턴 등 빅데이터 분석에 참가한 신한카드 인턴사원들이 지난달 회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올해 1월 신한카드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진행한 빅데이터 교육 과정에도 참가했다. 신한카드 제공
1인 가구의 소비 패턴 등 빅데이터 분석에 참가한 신한카드 인턴사원들이 지난달 회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올해 1월 신한카드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진행한 빅데이터 교육 과정에도 참가했다. 신한카드 제공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 쌓이는 카드사들의 결제 데이터에는 고객의 이용 금액뿐만 아니라 장소와 시간, 이용자의 연령 등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카드사들은 이미 방대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결제 데이터를 활용 중이다.
지난달 1일 서비스를 시작한 서울시의 ‘우리 마을 가게 상권 분석 서비스’(golmok.seoul.go.kr)는 BC카드에서 제공한 카드 결제명세 등의 빅데이터를 토대로 골목 상권에 대한 분석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이미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가게 위치와 업종을 선택한 뒤 알고 싶은 상권을 입력해 해당 상권에서 이뤄지는 실제 고객들의 소비패턴을 뽑아 볼 수 있다.

삼성카드도 지난해 7월부터 빅데이터를 활용해 가맹점의 마케팅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가맹점들의 요구 사항을 분석하고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들에 적합한 마케팅을 조언해주는 것이다.

대출 상품에도 카드 결제 데이터가 쓰인다. 우리은행이 지난해 내놓은 중금리 대출 상품 ‘위비 소호(SOHO) 모바일 대출’을 이용하면 모바일을 통해 별도의 서류 제출이나 지점 방문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때 대출 심사에 활용되는 것이 전국 약 280만 개 카드가맹점 빅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사업성 평가지수다.
이번에 신한카드가 분석한 것은 오피스텔과 원룸, 고시원에 거주하는 1인 가구 회원들의 소비패턴이다. 신한카드 분석팀은 1인 가구가 살 만한 실제 주소를 파악한 뒤 이 주소를 토대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그들의 소비행태를 분석했다. 그리고 학(學)옥살이족, 도화지족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단지 결제액의 규모나 소비패턴 등을 통해 1인 가구 여부를 추정했던 기존의 데이터 추출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이번 분석의 주축이 된 신한카드의 인턴사원(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은 이작업이 카드사들의 마케팅 기법 개선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빅데이터분석학을 전공하는 인턴 장준규 씨(30)는 “카드를 발급받는 고객이 1인 가구라는 사실을 즉시 확인할 수 있으면 그에 맞춘 혜택이나 프로모션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석 과정에서 일부 한계도 있었다. 인턴 손수현 씨(24)는 “나름대로 1인 가구를 정교하게 분류하려고 했지만 분석 대상이 된 1인 가구들의 실제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며 “따라서 원룸에 살지만 소득수준이 높은 1인 가구는 따로 분리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얀마에서 온 유학생도 분석에 동참했다. 흐닌난다윈 씨(23·여)는 “미안먀에는 1인 가구가 거의 없는데 한국은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관련된 비즈니스 아이템도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1인가구#골드미스#학옥살이족#도화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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