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빠른 푸틴의 手… 서방은 당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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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파병 5개월반만에 철군 명령… 美에 사전통보 않고 전격 선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리아 내전에 군대를 파견한 지 5개월 반 만에 주요 병력의 철수를 결정했다. 미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은 전격적인 선언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30일 시리아에 가차 없는 첫 공습을 시작해 서방 세계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번엔 시리아 평화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병력 철수 방침을 통보했다. 푸틴이 서방에 반보씩 앞서 나가며 주도권을 잡는 형국이다.

푸틴은 14일 저녁 크렘린 궁에서 국방부 장관 및 외교부 장관과 회의를 가진 뒤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던 목표들이 전반적으로 성취된 것으로 본다”며 철군 결정을 내렸다. 러시아 정부 대변인은 이 내용을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에게 통보해 합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며 지난해 9월부터 시리아에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전투기가 9000회 이상 출격했고 반군의 돈줄인 석유 생산 및 운송 기지 209개를 파괴했다. 특히 정부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비롯해 400개 거점을 반군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푸틴의 철수 결정은 파병을 통해 기대했던 성과를 대부분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BBC는 전했다. 러시아가 내전에 개입할 때만 해도 정부군은 붕괴 직전에 놓일 정도로 수세에 몰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리아 서쪽 레바논 접경 지역을 대부분 탈환해 점령지가 1만 km²로 늘어났다. 아사드 정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확고히 다진 것이다.

푸틴은 혹시 있을지 모를 아사드 정권의 변심에 대비해 외교장관에게 시리아의 정치적 변화를 면밀히 지켜볼 것을 지시했다. 또 지상군을 비롯한 주 병력을 빼는 대신 헤메이밈 공군기지에 공군력을 남겨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의 철군 결정은 아사드 정권이 안정 상태에 들어섰다는 신뢰감을 표시한 것일 수도 있고, 아사드에게 시리아 내 정적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라고 압력을 넣은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푸틴은 한발 빠른 군대 철수로 시리아 내전 종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개입과 크림 반도의 병합으로 서방의 비난과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시리아 사태를 계기로 서방과 관계 개선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내부적으로는 저유가 속에 돈줄이 마르고 있어 철군 결정을 앞당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BBC는 전했다.

서방은 러시아의 군대 철수를 반기면서도 푸틴의 속내를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무엇보다 철수가 제대로 이뤄질지에 대해 의혹이 쏠린다. 시리아에 파견된 러시아 군대의 정확한 규모도, 철수되는 인원도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푸틴은 15일부터 철수 시작을 지시했지만 완료 시점은 공개하지 않았다. 철수 발표 이후 푸틴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전화 통화를 하고 철수에 관련한 세부 사항을 논의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따져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개입을 줄곧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했고 폭격 또한 반군과 시민이 아닌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 집단에 집중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철수로 그런 주장이 눈가림에 불과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디언은 “푸틴은 ‘시리아에서 목표가 성취됐다’며 철군을 지시했는데 IS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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