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치적 올바름이 미국 망치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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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숨죽이던 증오심에 불지른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은 무슬림이 싫다’고 말하니까 이슬람 국가에서 활동하는 미국인들이 매우 적대적인 분위기를 느낀다고 합니다.”(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9·11테러를 보세요. 이슬람 국가에서 여자들은 얼마나 끔찍한 대우를 받나요. 당신(루비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겠지만 난 아니에요.”(도널드 트럼프)

10일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 후보 12번째 TV토론에서도 트럼프는 자신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을 거부하는 후보’임을 강조했다. 정치적 올바름은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적인 언어와 소수자나 약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표현을 바로잡으려는 사회 운동을 뜻하는 말로 1980년대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부터 ‘PC와의 전쟁’을 핵심 선거 전략으로 내세웠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이 미국을 망치고 있다. 워싱턴 정치인들이 그것 때문에 문제의 핵심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해 왔다. 그는 직설과 독설 때문에 온갖 비난을 받고 있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만이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솔직한 후보”라고 열광한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PC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68%가 ‘PC가 심각한 문제’라고 대답했다. 진보적 인사들조차도 “PC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21세기판 매카시즘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한다. 매카시즘이란 1950년대의 마녀사냥 식의 반(反)공산주의 광풍을 말한다.

‘보수주의자의 핸드북’이란 책을 쓴 라디오 진행자 필 밸런타인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란 이유로 그 어떤 다른 목소리도 관용하지 않는 PC야말로 진보 세력의 파시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폭력을 휘두르고 도망가는 흑인을 쫓아가면서 ‘검둥이(Nigger)! 거기 안 서!’라고 말하면 그 흑인의 폭력보다 PC에 위배되는 ‘검둥이’라는 단어가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된다. 이게 정상이냐”고 했다.

영국 가디언도 “트럼프 지지자 상당수는 PC의 사회적 강요에 질린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한 60대 여성은 “종교색이 드러날까 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못 하고, 상대가 성적 소수자일 수 있으니 ‘그’나 ‘그녀’란 호칭을 쓰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며 “나 때문에 누가 상처받을까 걱정하는데 내가 상처받는 걸 걱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정치적 올바름’이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데 따른 부작용도 심각하다. 13일 트럼프의 시카고 유세장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는 ‘PC가 사라져 가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 줬다고 미 언론은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들이 그에 반대하는 흑인들을 물리적으로 밀치면서 ‘다음에 또 방해하러 오면 죽여 버리겠다’는 극단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PC 때문에 그동안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보수층 미국인들의 속은 시원해졌지만 트럼프 같은 극단적인 인물이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트럼프#보수#정치적올바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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