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대중의 ‘혁신’이 번영의 원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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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번영의 조건/에드먼드 펠프스 지음/이창근 등 옮김/576쪽·2만5000원·열린책들
세계적 경제 석학 펠프스, 18세기 유럽의 ‘근대 경제’ 강조
“조합주의는 기업 성장 저해할 뿐”

18∼19세기 촉발된 유럽의 산업혁명(오른쪽 사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가져왔다. 저자(왼쪽)는 장기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대중의 혁신이 문화로 체화됐던 이 시기에서 해답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열린책들 제공
18∼19세기 촉발된 유럽의 산업혁명(오른쪽 사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가져왔다. 저자(왼쪽)는 장기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대중의 혁신이 문화로 체화됐던 이 시기에서 해답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열린책들 제공
토마 피케티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욕구를 느낄 것이다. 저자(83)는 피케티와 장하성 등 소득균형과 공동체적 대응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가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염증으로 최근 ‘21세기 자본’류(類)의 책이 쏟아지고 있는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셈이다.

좌파 시각을 가진 독자들은 서문만 보고 “웬 ×아이 같은 저자냐”고 윽박지를 수도 있겠지만, 상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펠프스는 경제학 원서에 반드시 등장하는 필립스 곡선(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는 가설)에 대해 ‘기대심리’를 끌어들여 비판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다.

펠프스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키워드는 ‘혁신’이다. 한두 명이 아닌 대중(원제가 ‘mass flourishing’인 이유다)이 각각의 삶에서 고군분투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생산성을 높이려고 시도할 때 경제가 발전하고 분배 정의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에게 혁신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적’이다. 심지어 그것이 요즘 각국의 핵심 정책 목표인 복지국가 모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안일한 복지 지출과 이로 인한 재정 적자는 혁신을 저해하고 경제를 멍들게 한다는 논리다.

이런 관점에서 펠프스는 최근 미국 정치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럽식 코퍼러티즘(Corporatism·조합주의)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노사정 대타협으로 포장돼 있는 코퍼러티즘은 실상 정실주의와 도덕적 해이로 점철돼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노조 등 이익단체에 휘둘려 시장에서 경쟁을 가로막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코포러티즘에 의해 정부와 대기업 노조가 서로 결탁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업의 등장을 지체시키고 생산성을 둔화시켰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펠프스는 자본에 대해서도 칼을 겨눈다. 그에 따르면 각국에서 많은 특수이익 법안이 대중은 잘 알아차리기 힘든 형태(이를 테면 세금 감면이나 면제, 예외 조항 등)로 존재한다. 이 법안의 지원을 받는 대기업들은 시장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함으로서 새로운 참여자들의 시장 진입과 혁신을 가로막게 된다.

펠프스는 미국과 유럽의 현대 자본주의가 1980, 90년대부터 심각한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1970년대까지 누렸던 혁신과 대중의 높은 직무 만족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가 제시하는 답안은 간단하다. 엄청난 혁신으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18, 19세기 유럽의 근대 경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시대를 단순히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도약의 시기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이 시기 대중이 상상력과 모험심으로 끊임없이 혁신을 일군 문화를 갖고 있었다는 데 주목한다. 다음은 저자의 주장.

“태도와 신념이야말로 근대 경제가 지닌 역동성의 원천이다. 자생적 혁신을 이끄는 개인주의와 상상력, 분별력, 자기표현을 보호하면서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주로 문화의 역할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대번영의 조건#에드먼드 펠프스#토마 피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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