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00년 만에 받은 선물… 중력파, 우주의 窓을 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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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오정근 지음/292쪽·1만6000원·동아시아

미국 ‘라이고(LIGO·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가 중력파를 지난해 직접 검출했다고 이달 12일 발표하자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파를 예견한 지 100년 만에 확인한 이번 검출은 노벨상급으로 평가받는 업적이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총무간사로 라이고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저자가 중력파 검출의 의미와 수십 년에 걸친 과학자들의 노력을 풀어 썼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의 일렁임이 연못가까지 미친다. 중력파도 비슷하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운동을 하면 중력파가 생기고, 시공간의 일렁임이 멀리까지 미친다. 그 일렁임에 따라 멀리 떨어진 물체도 길이가 잠시 변하는데, 이를 재면 중력파를 검출한 것이다.

문제는 중력파가 아주 미약하다는 것. 일상에서는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양끝에 각각 1t 무게의 원반이 달린 2m 길이 역기를 초당 1000번 빙빙 돌린다고 할 때 중력파의 세기는 대략 9×10-³9이 된다. 양자역학이 허용하는 최소 길이가 10-³5m임을 감안하면 너무도 미약하다.

미국 ‘라이고’에서 사용되는 정밀 거울. 중력파 검출을 위해 레이저를 반사하는 장치다. 동아시아 제공
미국 ‘라이고’에서 사용되는 정밀 거울. 중력파 검출을 위해 레이저를 반사하는 장치다. 동아시아 제공
그래서 우주에서 서로를 돌고 있는 두 개의 별(쌍성계)이나 두 개의 블랙홀이 합쳐질 때 나오는 비교적 큰 중력파를 잰다. 크다고?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처녀자리 성단에서 고밀도의 중성자별 두 개가 1km 간격으로 돌면서 합쳐지는 중이라면 중력파의 크기는 대략 10-²¹ 정도가 된다. 이는 태양 크기 물체가 수소원자 반지름만큼 늘거나 줄어드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어떻게 재나? 오랜 도전 끝에 마침내 성공한 것은 대형 레이저 간섭계다. 레이저 빛의 경로를 나눴다가 다시 합쳤을 때 생기는 간섭무늬의 변화를 통해 중력파로 인한 길이 변화를 알아내는 원리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 리빙스턴에 건설된 라이고 검출기의 초기 모델도 수백 km 떨어진 뉴올리언스 해안에서 치는 파도를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각종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정밀도를 더욱 높였다. 지난달 6일 북한의 핵실험 정도는 당연히 감지할 수 있지만 당시 점검 중이었다고 한다.

한데 역설적으로 높은 감지도가 검출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지진, 번개, 트럭이나 복도를 걷는 사람의 진동, 기기 자체의 잡음 등 수많은 노이즈를 걸러내고 순수한 중력파를 가려내야 한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진 몰래 중력파처럼 생긴 파형을 입력하고 이를 찾아내는지 확인하는 ‘암맹 주입 테스트’는 악명이 높다. 연구진들은 두 번이나 중력파형을 발견하고 진짜 중력파 검출인지 몰라 가슴 졸이며 반년에서 1년 반 동안 논문까지 준비했지만 연례총회에서 ‘인위적으로 주입된 것’이라는 통보를 들었다.

책은 중력파 검출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드라마틱한 도전을 소개한다. 검출 실험의 선구자이자 한때 검출에 성공했다고 평가받았던 미국 메릴랜드대 조지프 웨버 교수(1919∼2000)가 잘못된 실험 결과를 옳다고 고집하다가 학계에서 사라졌던 일화는 안타깝다.

저자는 중력파 검출 전 원고를 완성했다가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닷새 뒤인 지난해 9월 14일 라이고로부터 중력파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신호가 검출됐다는 e메일을 받고 내용을 수정했다고 한다. 평소 현대물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쓴 것이 큰 장점이다.

저자는 “전자기파 발견 뒤 전파 천문학의 시대가 열린 것처럼 이번 중력파 검출로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창문이 열렸다”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라이고#중력파#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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