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조선 왕자’ 의친왕 이강 젊은 날 사진 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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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11월 러 신문에 게재… 1897년 도미 이전에 촬영한 듯

러시아 신문 ‘노보예 브레먀’에 실린 의친왕 이강의 젊은 시절. 한복을 입은 채 왼손에 선글라스를 들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실장 제공
러시아 신문 ‘노보예 브레먀’에 실린 의친왕 이강의 젊은 시절. 한복을 입은 채 왼손에 선글라스를 들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실장 제공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황족 중 항일운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의친왕 이강(1877∼1955)의 젊은 시절 사진이 새로 발견됐다.

이 사진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신문 ‘노보예 브레먀’(새 시대) 1903년 11월 1일자에 실린 것으로 “일본에 살다가 현재 미국에서 수학 중인 조선의 왕자”라는 설명이 달렸다.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미뤄볼 때 의친왕이 1897년 미국으로 가기 전 한국이나 일본에서 촬영한 사진을 게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을 공개한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동해연구실장은 “노보예 브레먀는 러시아 황제가 구독하고 관료들이 현안 보고서를 작성할 때 자료로 활용한 신문”이라며 “러일전쟁 직전 러시아가 고종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있는 왕자로 의친왕을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의친왕은 1895년 영국 미국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을 특파대사 자격으로 방문했으며, 이후 미국 오하이오 주 웨슬리언대와 버지니아 주 로어노크대에서 공부했다.

3·1운동 이후인 1919년 11월 항일단체인 대동단(단장 전협) 간부들과 함께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망명을 시도했다. 변장을 한 채 중국 안둥(현 단둥)까지 갔으나 그곳에서 일본 경찰에 발각돼 실패했다.

그는 망명 실패 이후 “임시정부에 합류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죽음을 복수하고 조국의 독립과 세계평화에 헌신하겠다”는 편지를 임시정부에 보내기도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의친왕 이강#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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