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착한 커피’, 농부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선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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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세상:나는 음식에서 삶을 배웠다/켈시 티머먼 지음·문희경 옮김/392쪽·1만6500원·부키

아동에게 노동을 시키지 말라고 당부하는 벽화가 그려진 코스타리카의 한 마을. 저자는 이 곳에서 짐을 잔뜩 담은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는 여자아이를 봤다. 그냥 눈을 뜨면 보이는 광경이란다. 부키 제공
아동에게 노동을 시키지 말라고 당부하는 벽화가 그려진 코스타리카의 한 마을. 저자는 이 곳에서 짐을 잔뜩 담은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는 여자아이를 봤다. 그냥 눈을 뜨면 보이는 광경이란다. 부키 제공
“날마다 죽어가는 것 같아요.”

다리가 꺾인 채 마룻바닥에 누운 니카라과의 잠수부 앤드루가 고통스럽게 말한다. 때 묻은 붕대 밑으로 진물이 흐른다. 그는 열세 살부터 9년 동안 바닷가재를 잡아왔지만, 몸을 다치자 선주와 가족에게서 버려졌다. 특별한 날을 근사하게 만드는 바닷가재는 잠수부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히고 있다.

커피, 바나나, 초콜릿, 사과주스도 다르지 않다. 너무도 친근한 이 음식들이 누군가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재배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니카라과를 비롯해 콜롬비아, 코트디부아르, 코스타리카, 중국 등 4개 대륙을 7개월간 누볐다. 아침마다 먹는 ‘스타벅스 콜롬비아 로스트’를 누가 재배하는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단이 됐다. 앞서 저자는 즐겨 입는 옷의 원산지인 온두라스, 방글라데시 등의 노동자를 취재해 ‘나는 어디에서 입는가(한국어판 제목 ‘윤리적 소비를 말한다’)’를 펴냈다.

커피와 바나나를 따는 작업에 뛰어든 체험기는 아찔하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콜롬비아의 커피 농장에서는 넘어지는 순간 허리를 묶은 벨트에 몸이 두 동강 나버릴 것 같다. 바나나를 딸 때 쓰는 무거운 칼인 마체테는 아차 하는 순간 손가락을 날려버릴 수 있다. 바닷가재 잠수부들처럼 장시간 잠수에 나섰다가 고압실로 실려가 응급치료까지 받는다. 몇 주간 계속됐던 왼쪽 팔꿈치의 통증은 이후 피곤할 때마다 나타나 몸을 괴롭힌다.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하고 성인용 세발자전거 페달을 손으로 돌리며 다니는 니카라과의 젊은 남자들이 바닷가재 잠수부였다는 건 놀랍지 않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초라하다. 카카오 농장의 농부들은 허쉬 초콜릿이 1kg에 10달러(약 1만2000원)라는 말에 탄식을 내뱉는다. 그들은 카카오 씨앗 1kg에 1달러(약 1200원)를 받고 있었다.

산비탈에서 커피 열매를 따는 저자. 부키 제공
산비탈에서 커피 열매를 따는 저자. 부키 제공
흔치 않은 여행기 같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공정무역이 단순히 노동자를 돕는 시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농가에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건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친 뒤, 두 아이의 아빠인 저자는 아장아장 걷는 아들이 자폐일지 모른다는 진단에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자폐아가 늘어난 원인이 살충제일지 모른다는 미국 소아과학회의 성명을 주목한다. 실제 저자가 방문했던 중국의 사과 농장에는 벌레 한 마리, 풀포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1년에 6번 살충제를 뿌리는 곳이었다. 저자의 집 냉장고에 든 사과주스는 원산지가 중국으로 표기돼 있다. 그의 지인인 데이브 부부는 세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않는 딸을 위해 식단에서 글루텐과 우유 단백질의 일종인 카세인을 뺐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몇 년이 지나자 아이는 또래 친구들처럼 말하고 홀로 척척 생활하게 됐다.

공정무역 제품이나 환경인증 제품을 사는 데서 멈추지 말고 인증기관이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어떻게 일하는지 꾸준히 확인하자는 저자의 제안은 호소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7년 연설에서 빵, 커피, 차, 코코아를 언급하며 말했다. “우리는 아침에 식사를 끝마치기도 전에 지구상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중략) 우리가 모든 현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는 기본적인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지상에서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쇠사슬이 되지 않도록 행동에 나설 수 있다. 일상에서 마주한 음식에서 지구상의 그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변화는 이미 시작된 건지 모른다. 원제는 ‘Where am I eating?’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식탁 위의 세상#공정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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